명심보감 존심편 2(存心篇)

지금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담보 삼아 스스로 불행해지지는 말라

by 똥뫼

낮과 밤 사이에 黃昏(황혼)이 있듯,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여름 같은 가을, 가을 같은 여름의 환절기가 있다.

낮과 밤이 비교적 담백하게 역할을 교대하는 반면, 계절은 해마다 겪는 사람들도 아리송하게 만들 만큼 기나긴 줄다리기를 하며 역할을 교대한다.

마치 수천 번 해변을 어루만지며 빠져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파도처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려 밀당하는 연인처럼, 여름인지 가을인지 좀 잡을 수 없게 만들며 여름은 조금씩 가을로 접어든다.

미련 많은 여름. 문 밖 서성이는 가을.

조바심 내는 사람들.

매년 겪는 계절의 발자취인데.

애태운다고 별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마음 다스리기가 그만큼 어렵다.

마음 다스리는 이야기 ‘存心篇’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寇萊公六悔銘云, 官行私曲失時悔(구래공육회명운, 관행사곡실시회)

‘구래공이 쓴 육회명(여섯 가지 후회를 기록)이라는 책에서 이르기를, 관리가 사사로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 그 직을 잃고 나서 후회하고’

富不儉用貧時悔 見事不學用時悔(부불검용빈시회 견사불학용시회)

‘부자가 검소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가난해질 때 후회하고, 일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그 일을 할 때(해야 할 때) 후회한다.’

藝不少學過時悔 醉後狂言醒時悔(예불소학과시회 취후광언성시회)

‘기술을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시기가 지난 후에 후회하고, 술 취한 후 망언을 하면 술이 깨었을 때 후회하며’

安不將息病時悔.(안부장식병시회.)

‘편안할 때 쉬지 않으면, 병이 들어 후회한다.’


※ 悔(회): 뉘우칠 ※ 銘(명): 새길

※ 官(관): 벼슬, 관리 ※ 行(행): 처리하다

※ 私曲(사곡): 사사로울 '사', 굽을 '곡', 공정하지 못하고 자기 잇속만 챙김

※ 失時(실시): 때를 놓치다

※ 儉用(검용): 검소하게 사용하다

※ 貧時(빈시): 가난할 때

※ 見事(견사): 일을 보다

※ 不學 (불학): 배우지 않다

※ 用時 (용시): 필요할 때

※ 過時(과시): 때가 지나다, 시기를 놓치다


이 구절은 중국 송나라의 명재상인 寇準(구준)이 쓴 글로 그는 나중에 '萊國公(래국공)'이라는 작위를 받아 '구래공(寇萊公)'이라 불렸다. 萊國(래국)이라 불리는 제후국을 다스리는 영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동아시아의 봉작제도는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公(공), 侯(후), 伯(백), 子(자), 男(남) 등 五等爵(오등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준은 ‘공’에 봉해졌으니 황족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서열에 올랐다고 보면 된다. 유럽의 공작(Duke)과 비슷하다.

이 구절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체험하고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쭉 살펴보니,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면 결국 나중에 후회하게 되더라. 그러니 너희들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조심하여 그러한 불행을 막도록 해라’와 같은 당부의 글이다.

앞사람의 잘못된 전철을 거울삼아 후대의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줬던 사례로는 수나라 두 번째 황제 隋煬帝(수양제)가 있다.

수양제는 아버지 文帝(문제)가 이룩한 부강한 나라를 물려받았지만, 그의 통치는 온통 사치와 토목 공사, 그리고 대규모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수양제는 대운하를 건설하고, 장안과 낙양에 거대한 궁궐을 지으면서 수많은 백성을 노역으로 희생시켰고 나라의 재정을 바닥냈다.

그는 빈번하게 강남으로 유람을 떠났는데, 그 유람 행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행렬의 길이가 무려 200리에 달했고, 수만 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수레와 배를 끌게 하는 등 극도의 사치를 부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는 또 무리하게 세 차례에 걸쳐 고구려 원정을 감행했다가 패배하여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는 지름길을 맞았다.

수양제의 이러한 과도한 통치와 사치, 무리한 대외 정책은 결국 전국적인 반란을 불러왔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특별한 이민족의 침략이 없었음에도 수나라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게 만들었다.

균전제와 과거제의 전신인 選擧制(선거제)를 실시하여 국가를 건국하자마자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수문제의 隋(수) 나라는 40년이 채 못 되어 暴君(폭군)인 아들 때문에 멸망하고 말았다.


수나라를 이어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는 수양제의 잘못을 거울삼아 나라를 잘 통치했고 300년 가까이 왕실을 지킬 수 있었다. 중국 역사의 통일왕조 중 200년 이상 존속한 왕조는 다섯 왕조뿐이었으며, 당나라는 청나라 다음으로 오래 지속된 왕조였다.





益智書云,(익지서운)

‘익지서에 이르기를’

寧無事而家貧 莫有事而家富(영무사이가빈 막유사이가부)

‘일이 있으면서 집이 부유한 것보다 아무 일 없이 집이 가난한 것이 더 낫고’

寧無事而住茅屋 不有事而住金屋(영무사이주무옥 불유사이주금옥)

‘일이 있으면서 대궐에 사는 것보다 아무 일 없이 초가집에 사는 게 더 나으며’

寧無病而食麤飯 不有病而服良藥.(영무병이식추반 불유병이복양약.)

‘병에 걸려 좋은 약을 쓰는 것보다 아프지 않고 거친(꽁보리) 밥을 먹는 게 더 낫다.’

※ 寧A莫B(영A막B)=寧A不B(영A불B): B 하는 것보다 차라리 A 하는 게 더 낫다

※ 無事(무사): 일이 없다, 탈이 없다, 평안하다

※ 有事(유사): 일이 있다, 탈이 있다

※ 茅屋(모옥): 띠집, 초가집 ※ 金屋(금옥): 호화로운 저택이나 궁궐

※ 麤飯(추반): 거친 밥(고급스럽지 않은 소박한 음식)

※ 有病 (유병): 병이 있다

※ 服(복):(약을) 복용하다

※ 良藥(양약): 좋은 약

호화로운 생활이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통과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소박하지만 평온하고 건강한 삶에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가르침이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담보 삼아 스스로 불행해지지는 말라는 의미다.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의미도 된다.

고사성어 중 邯鄲之夢(한단지몽)에 얽힌 이야기는 위 문장의 교훈을 잘 말해준다.


옛날 노생이라는 젊은 선비가 과거 시험을 보러 장안(長安)으로 가던 중, ‘邯鄲(한단)’이라는 마을의 한 주막에서 ‘여옹’이라는 도사를 만났다. 노생은 주막에서 도사에게 자신의 불운한 신세를 한탄하며, 빨리 출세해서 공을 세우고 영화를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도사는 노생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으며 베개 한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베개를 베고 잠시 눈을 붙여 보게."

노생은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고, 곧바로 고위 관직에 오르게 된다.

그는 명망 높은 가문과 혼인하여 자손을 번성시키고, 재상은 물론 승상까지 오르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영광스러운 삶 속에서도 그는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귀양을 가기도 하고, 다시 복권되어 영광을 누리기도 하는 등, 50여 년간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꿈속에서 늙어 죽을 때가 되어 눈을 감으려는 순간,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짧은 시간 동안 꿈을 꾼 것이었다. 꿈속의 수십 년이 현실에서는 밥 익을 만큼의 짧은 순간이었다.

노생은 자신의 인생 목표였던 부귀영화를 꿈속에서 모두 경험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한순간의 허망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출세를 향한 욕망을 버리고 도사와 함께 속세를 떠나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心安茅屋穩 性定菜羹香.(심안모옥온 성정채갱향.)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평온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 茅屋(모옥): 초가집 ※ 穩(온): 평온할

※ 菜羹(채갱): 나물국 ※ 香(향): 향기롭다

행복한 주거와 미식의 조건은 물리적인 환경이나 고급스러운 재료에 있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다는 의미다.

안회의 일생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인 顏回(안회)는 학문과 인품이 뛰어났지만 매우 가난했다.

공자는 안회를 이렇게 칭찬했다.

“一簞食, 一瓢飲,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현재회야)

“대그릇에 담은 밥 한 그릇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거리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늘 즐거워하는구나! 어질구나, 안회여!”


여기서 簞食瓢飮(단사표음)이 유래했다.





景行錄云,(경행록운,)

責人者不全交 自恕者不改過.(책인자부전교 자서자불개과.)

‘경행록에 이르기를, 남을 책망하는 사람은 온전하게 사귈 수 없고, 스스로 용서하는 자는 (자기의)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

責人者(책인자): 남을 꾸짖는 사람, 남의 허물을 책망하는 사람.

不全交(부전교): 온전하게 사귀지 못하다

自恕者(자서자):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

不改過(불개과): 허물을 고치지 못하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단점이나 허물을 지적하거나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과 비판은 상대방에게 결국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어 깊고 진솔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은 쉽게 합리화하고 용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韓愈(한유)는 매우 곧은 성품으로 상대의 잘못을 곧잘 비판했고 자기의 뜻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런 성품으로 인해 조정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좌천되어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지방으로 가던 길, 그는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좌천된 것에 대해 불평하며, 스승의 좌천은 부당하다며 그들의 스승을 맹목적으로 옹호했다.

한유는 제자들을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록 옳다고 믿는 바를 이야기했으나, 그 표현 방식이 너무 급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소홀했다. 또한 나의 언행으로 인해 조정에 혼란이 생긴 부분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잘못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 이 좌천은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

한유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거나 남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책망했다.





夙興夜寐 所思忠孝者(숙흥야매 소사충효자)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자면서(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충효를 생각하는 사람은’

人不知 天必知之.(인부지 천필지지)

‘남들은 모르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알아준다.’

※ 夙興夜寐(숙흥야매):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다

※ 所(소): ~바, ~는 경우, ~하는

위 문장은 넓은 의미로 해설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가에 연연하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면, 비록 당장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결국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합당한 보상은 꼭 당사자에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합당한 보상은 일반적으로 후손들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때 후손들이 받는 복을 조상의 음덕이라고 한다.

한나라 때 楊震(양진)이라는 청렴한 재상이 있었다.

‘정기편’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지인이 몰래 뇌물을 주었을 때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아는데 어찌 모른다고 하느냐'며 단호히 거절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이러한 올곧고 청렴한 행동은 당시 너무 완고하다는 평을 들었고, 올곧은 행위를 시기하는 이들에 의해 음해되거나 그의 공적이 많이 가려지기도 했고, 높은 벼슬에 비해 재산도 많이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양진의 음덕은 그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양진의 아들 楊秉(양병)은 청렴함과 덕망으로 재상이 되었고,

양진의 손자 楊賜(양사)는 또한 학문과 인품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양진의 증손자인 양표(楊彪) 역시 재상이 되어, 무려 4대에 걸쳐 연속으로 재상의 자리에 오르는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飽食煖衣 怡然自衛者(포식난의 이연자위자)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으면서 자기의 안위만을 기뻐하는 사람은’

身雖安 其如子孫何.(신수안 기여자손하)

‘몸은 비록 편안할지라도 그 자손들은 어찌할 것인가?’

※ 飽食煖衣(포식난의):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다

※ 怡然(이연): 기뻐하다

※ 身雖安(신수안): 몸은 비록 편안할지라도

※ 何(하): 어찌


자신의 이익과 만족만을 추구하며 불우한 이웃에 대한 기부나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등한시하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러한 삶은 결국 후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서진 시대에 석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관직에 있었지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부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황실 외척 왕개(王愷)마저 압도할 정도였으며, 수십 명의 아름다운 시녀와 첩들을 거느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그의 정원 金谷園(금곡원)은 비단과 진귀한 보물로 가득했다.

석숭은 이러한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 속에서 오직 자신의 안위와 쾌락만을 즐겼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욕심과 과도한 사치는 결국 화를 불렀다.

정치적 암투에 휘말려 자신의 아름다운 애첩 綠珠(녹주)를 탐내던 권력자 孫秀(손수)의 모함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의 부귀영화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더 비참한 점은, 그의 아들들을 포함한 가족들까지도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점이다.


삶은 현실이다. 이익을 좇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는 없다.

다만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행위가 후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以愛妻子之心 事親則曲盡其孝(이애처자지심 사친즉곡진기효)

‘처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면 그 효가 곡진하고’

以保富貴之心 奉君則無往不忠(이보부귀지심 봉군즉무왕불충)

‘부귀를 보존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받들면 불충하지 않을 것이며’

以責人之心 責己則寡過(이책인지심 책기즉과과)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면 자신의 허물이 적게 되고’

以恕己之心 恕人則全交.(이서기지심 서인즉전교.)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사귐이 온전해진다.(원만해진다)

※ 曲(곡): 지극히, 간절히(동사를 강조하는 부사). ※ 盡(진): 다할, 다하다

※ 奉君(봉군): 임금을 받들다

※ 往(왕): 갈 왕, (어디로) 가다

※ 則寡過(즉과과): 그러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 則全交(즉전교): 그러면 (남과의) 사귐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효를 강조했던 옛날이나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는 지금이나 마음의 본질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우리는 자식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랑과 헌신을 쏟는다.

그러한 사랑과 헌신을 부모에게 쏟는다면 완벽한 효도가 발현되고,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철저히 대비하고 애쓰는 정성으로 임금을 받들면 불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란 뜻이다.

또한,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면, 자기 자신은 잘 다스리면서 남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지혜의 메시지다.





爾謨不臧 悔之何及,(이모부장 회지하급)

’너의 계획이 옳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爾見不長 敎之何益.(이견부장 교지하익)

’너의 식견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利心專則背道(이심전즉배도)

’이기심만 있다면(이기심에 골몰하면) 도를 배반할 것이며’

私意確則滅公.(사의확즉멸공)

‘사사로운 목적이 확고하면 공을 망치게 될 것이다.’

※ 爾(이): 너. (너의) ※ 臧(장): 착하다, 좋다, 올바르다.

※ 爾謨不臧(이모부장): 너의 계획이 좋지 않으면

※ 悔之何及(회지하급): 후회한들 어디에 미치겠는가? ※ 悔(회): 후회하다.

※ 見(견): 볼, 여기서는 見識(견식)이나 식견 ※ 長(장): 자라다, 성장하다

※ 爾見不長(이견부장): 너의 식견이 자라지 않는다면

※ 益(익): 이롭다, 도움이 되다

※ 敎之何益(교지하익): 가르친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 利心(이심):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 專(전): 오로지, 오로지 ~에만 전념하다

※ 背道(배도): 도를 배반하다

※ 私意確(사의확): 사사로운 목적이 확고하면

※ 滅公(멸공): 공적인 것을 망치다


모든 일은 바른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배우고 경험하면서 식견을 넓혀야 하고, 이기적인 욕심에만 몰두하여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기심과 사사로운 욕심이 공익을 망치는 사례로 삼국지 曹操(조조)의 부하 楊修(양수)의 이야기가 있다.

양수는 조조의 부하로 조조의 의중을 귀신같이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수는 조조가 어떤 지시나 질문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전에 그 의도를 정확히 알아내어 조조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하루는 조조가 부하들에게 정원을 하나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정원이 완성되자 조조가 정원을 구경하러 갔다가 유심히 살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정원 문에 ‘活(활)’ 자를 써놓고 돌아갔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을 본 양수는 이렇게 말했다.

"門(문)에다 活(활) 자를 써놓았으니, 이것은 곧 闊(넓을 활)자를 뜻하는 겁니다. 승상께선 정원이 너무 넓다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겠소?"라 말하고 정원 크기를 줄여놓았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조조가 낙(酪)이라는 술을 한 병 선물 받았다. 조조는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 병에 일합(一合)이라는 글자를 써 놓고 옆의 신하들에게 돌렸다. ‘一合’을 본 신하들은 의아해했으나 양수는 술병이 자기 자리에 오자 이렇게 말했다.

"一合(일합) 자를 나눠 풀이해 보면 일인일구(一人一口), 즉 한 사람당 한 모금이라는 뜻이오." 하고는 술을 따라 한 모금 마셨다.

양수가 왜 죽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曹丕(조비)와 曹植(조식)의 후계자 다툼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양수는 조식의 편에 서서 조식이 조조의 시험에 통과하고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온갖 계책을 몰래 가르쳐 주었다.

조조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양수가 자신의 사적인 목적(私意)을 위해 공적 질서인 후계 구도에까지 개입하려 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조조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


개인의 능력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올바른 가치관과 공정한 마음, 그리고 적절한 자기 절제 없이 그 재능을 사사로이 이용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신과 공동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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