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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6. 2017

소박한 소원

청양 장곡사

눈이 오는 날도 좋고 눈이 오지 않는 날도 좋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세상은 그곳에서 사람들을 맞이해준다. 즐거운 하루가 시작되는 날 그리고 이렇게 좋은 날 필자는 11월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마감전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딱히 의미 있는 약속도 없으니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글을 쓰는 호사(?)를 누려본다.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표현은 했지만 기분이 아주 즐겁지 않은 건 왜일까. ㅎㅎㅎ


좋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며칠 전에 눈이 많이 내렸다. 사진들을 보니 청양의 칠갑산이 눈 모자를 쓰고 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칠갑산의 천년고찰이라는 장곡사를 간 것이 지난 일요일이었다. 조금 일찍 출발했지만 배가 고픈 터라 갑작스럽게 경로 변경이 있었다. 매년 그곳의 막국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생각난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부여에는 감칠맛이 제대로 도는 맛난 막국수를 하는 집이 있다. 그곳으로 향해본다.  


영업을 시작하는 11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매번 갈 때마다 똑같은 음식이지만 찍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추워진 겨울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 국물의 매력은 계속 마시게 하는 데 있다. 원래 막국수의 국물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이곳의 국물은 필자는 바닥을 보일만큼 모두 마신다.


메밀가루 반죽은 뜨거운 물로 익반죽 해서 찰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결국 반죽 안에 공기를 빼는 과정이다. 반죽을 되풀이하면 구멍이 없어지면서 탄력 있고 매끄러운 면이 탄생한다. 삶다가 끓어 넘치면 찬물을 부어 진정시켜주고 퍼서 차가운 물에 헹군 다음 면을 둘둘 말아서 흩어지지 않게 그릇에 담고 양념장 약간과 오이, 고명, 깨와 김가루를 얹은 다음 육수를 붓는다. 

가격대가 살짝 있기는 하지만 막국수와 수육도 잘 어울린다. 이른 점심을 이렇게 많이 먹는 것은 오래간만이다. 보통 김장김치와 잘 어울리는 이곳의 수육은 막국수와 궁합이 맞도록 잘 삶아졌다. 수육은 식혀서 칼로 썰 때는 근섬유질이 많은 부위이므로 섬유의 방향과 수직 방향으로 썰어주는 것이 좋다. 조상의 지혜를 빌리자면 <증보산림경제>에 "고기를 삶을 때 닥나무 열매를 함께 삶으면 고기가 연해지고 맛이 좋다"라고 쓰여있기도 하다. 

배부르게 먹고 났으니 밥값 (등산)을 해야 하기에 멀지 않은 곳의 장곡사를 찾아갔다. 통일신라시대 850년(문성왕 12)에 보조선사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된 장곡사는 약간 경사진 땅 위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가람배치로 되어 있다. 상대웅전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철조약사불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와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고, 하대웅전에는 고려시대의 금동약사불좌상(보물 제337호)이 있다. 

교회에서 소원을 비는 대상은 보통 목사를 통해서이다. 마치 목사가 중개자인 것처럼 신의 대리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사찰에서 소원을 비는 대상은 그냥 그곳에 있는 불상이다. 때론 승려가 같이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참배객들은 홀로 들어가서 약간의 시주를 하고 소박한 소원을 빌고 나온다. 믿지 못하겠지만 보통 사람은 하루에 47,000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의식과 무의식, 분별 의식이 수많은 생각을  하고 또 흩어지기도 한다. 

사찰에 와서 두 손을 가슴께에서 마주하는 합장 수행은 마음을 모으는 방법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수행법이다. 사찰에 와서 하는 오체투지는 이마와 두 팔, 두릎이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것으로 이마를 땅에 대는 것을 나를 낮추는 하심이고 욕심과 성냄, 고집, 아집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오래간만에 상대웅전을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낙엽들이 수없이 땅에 떨어져 있다. 사찰의 경내도 보이지만 봄부터 애써 만들었던 나뭇잎을 미련 없이 떨어뜨린 나무의 지혜가 엿보인다. 나무들이 떨어트린 낙엽들은 다른 나무들의 성장의 거름이 되기도 한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듯이 사람도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꼭 안아주면 병이 낫고 자신이 근심을 날려주는 나무 복주머니도 있었지만 필자는 꼭 안아주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에 더 마음이 가게 된다.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 남은 장곡사 숲길을 걸으며 생각해본다. 태어나면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밥 먹는 일은 쉼 없이 하는 행동이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식사 한 끼를 하면서 좋은 날이 되길 바래본다. 


겨울이 되어 꽃이 보이지 않아도 그대 마음밭은 이미 꽃밭입니다. -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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