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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1. 2018

삼도수군 통제영

바다를 방어하다. 

바다가 있는 나라의 대부분은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데 나라를 지키는 일은 하늘과 육지, 바다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삼도를 통괄하여 지휘할 수 있는 통제영이 만들어진 것은 지옥의 전쟁이었다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다음 해인 1593년(선조 16)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이를 겸임하게 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임진왜란과 이어 정유재란이 끝나고 한산 진영은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남도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정착을 하지 못하다가 1603(선조 36) ~ 1605 (선조 38) 사이에 현재의 통영 문화동에 터를 마련하고 건물을 세워 정해정, 백화당, 세병관등의 객사를 세웠다. 

통영에 있는 삼도수군을 모두 지휘할 수 있는 통제영은 일제강점기에 100여 동의 건물이 모두 헐리면서 옛 흔적을 잃어버렸다.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불리는 곳이지만 조선시대에 체계적으로 계획된 해군의 군사도시로서의 의미가 큰 곳이기도 하다.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삼도수군통제사가 임명되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순신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은 싸움을 시작한 이래 오직 수군에게만 패하였는데 이를 분하게 여긴 도요토미는 고니시에게 어떻게든 해서 조선의 수군을 무찌르라는 명을 내린다. 고니시는 정면으로 이순신을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김응서에게 호감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이순신을 모함하는 계략을 꾸몄다고 한다. 그리고 원균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해 패하게 만든다. 

삼도수군 통제영이 무력화되고 조선 해군이 전멸하다시피 하고 한산도의 통제영이 함락되자 조정은 물론 백성들 또한 놀라서 어찌할 줄 몰랐다. 선조는 비변사의 신하들을 불러 향후 대책을 물렀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에 경림군 김명원과 병조판서 이항복은 조용히 아뢴다. 


"이는 원균의 죄입니다. 다시 이순신을 불러 통제사에 임명하옵소서."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에 이순신이 기용되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3도 수군을 통솔하는 해상 방어 총사령부인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처음 와보았지만 상당히 규모가 크고 잘 복원되어 있어 과거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다. 통제영이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현존하는 것은 보물 제293호로 지정된 세병관뿐이다. 1987년에 복원된 수항루등이 있다. 

삼도수군 통제영은 굳이 역사적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통영에 왔다면 한 번쯤은 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태양을 바라본다는 의미의 망일루,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항복을 받았다는 터에 만든 누각인 수항루, 제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두룡포(통영의 옛 이름)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만든 것을 담고 있는 비인 두룡포기사비등을 만나볼 수 있다.  

통영의 공방 문화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순신이 조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군수품을 만들기 위해 12 공방을 조성하였는데 전후에는 이곳에서 부채, 옻칠, 금은제품, 갓, 통영의 나전칠기 등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던 이순신은 시호가 충무로 통영의 명물이라는 충무김밥도 이순신의 시호이며 옛 통영의 지역명과 맞닿아 있다. 1995년에 충무시 일원과 통영군 일원이 합하여 통영시로 통합되었다.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가장 멋진 건물은 이 세병관일 것이다. 그 규모도 상당하기도 하지만 삼도를 통솔하는 중심건물로서의 가치가 상당히 커 보이는 멋진 건물이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세병마'라는 시의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낸다는 의미에서 따온 세병관이다. 오래전에 두보 평전을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두보는 자신의 조국과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전란으로 파괴된 산하와 처참한 백성들의 삶을 비장하게 탄식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마음을 시에 담았다. 그런 두보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보 - 세병마(洗兵馬)


어찌하면 장사를 얻어서

하늘에 있는 은하수를 끌어와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서

다시는 전쟁에 쓰지 않도록 할까?”

통영에 통제영이 자리하고 나서 역대 통제사들이 이곳에서 근무하였는데 통제영의 한 켠에는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두었다. 통제사 비군은 통제사가 부임하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후에 군, 관, 민이 세운 일종의 송덕비다. 

1598년 10월

"유정이 순천의 적 진영을 공격하고, 통제사 이순신은 적의 구원병을 바다 가운데 크게 물리쳤으나 이 싸움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이때 고니시 유기나가는 성을 버리고 도망쳤으며, 부산. 울산. 하동의 바닷가에 주둔하고 있던 적들도 모두 물러갔다." - 징비록

봄이 오는 날 통영의 바다는 이렇게 고요하지만 조선시대 삼도수군을 통제하던 해군본부가 있던 통영의 역사적인 공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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