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란 이유로 용서받을 수 없다.
이번에 쓰는 글은 성찰에 관한 글이다. 우선 사과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방이 사과를 받지 않으면 사과는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무지라는 이유만으로 용서가 될 수 있을까.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최소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 역시 조심스럽다고 하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를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있다. 그렇지만 무지했기에 당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는 무지했던 여성이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는 사랑, 전후 세대가 직면한 진실과 그들이 소통하며 겪는 고통, 인간의 수치심 등을 담고 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여자는 무지함의 상징이었고 어린 남자를 통해 자신의 지적 욕구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과거에 자신이 나치에 의해 이용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 없이 피해를 입히게 되었는지 말이다.
30대 여인의 떨림과 복합적인 감정, 평생의 비밀을 수치심으로 숨길 수밖에 없는 연약함과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순수할 만큼의 무지가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는 무지만으로 이 모든 것을 덮을 수없다는 것을 감옥에서 깨닫게 된다. 지성을 가진 어린 남자와의 사랑은 부차적인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역시 때론 초보가 된다. 무언가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가 된다는 것은 어설픈 성인이 가진 내면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압박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용서가 될 수 있을까.
자신의 무지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것을 안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모르고 살면 살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깨닫고 안 이상 그 자신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것은 인생의 진리를 단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너 자신을 알라' 그냥 명언이라고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만 알아서 상처 입었을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