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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7. 2018

아늑한 공간

문경 경천호 드라이브

비가 내리는 날 살짝 덥고 창문을 열지 못하고 안은 습하고 이런 상태에서 드라이브하는 느낌은 어떨까.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에어컨 가스는 떨어졌다.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내심을 배우기 좋은 시간이다.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것도 적응할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때 다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면 그냥 비를 맞으며 운전을 해보아도 좋다. 


산천이 아름다워서 수없이 와본 문경이지만 경천호는 처음 와본다. 아니면 전에 보았는데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날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그런지 마치 신선이 머물 것 같은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천호를 만들어내는 것은 비단 같은 천이라는 금천(錦川)으로 문경 동로면의 황장산에서 발원해 경사스러운 샘 경천호(慶泉湖)가 된다. 

드라이브 중에 이 풍광을 보려고 안 나갈 수가 없었다. 날이 무척 좋은 날 물가에 비친 산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운무가 가득해서 시야가 제한적인 때에도 색다른 느낌이 부여된다. 경천호는 금천을 막아서 만든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로 물은 맑지만 수심이 깊다. 경천호 물은 문경과 예천 2개 시·군 9개 읍·면의 76개 마을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는 젖줄이다. 

비가 주적주적 내려도 볼 것은 보고 즐길 풍광이 있다면 만나봐야겠다. 정자에서 쉬어보고 싶지만 정자에도 비가 들이쳐서 젖어 있었다. 

사진으로 본 것이랑 실제 운무가 가득한 경천호를 본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 정도에서도 충분히 그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감과 캔버스가 있다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보고 싶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운무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운무는 또 다른 시각을 부여해준다. 운무가 가득한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멀리 볼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것들을 더 세밀히 보게 된다.

끊임없이 구불구불하고 코앞이 보이지 않은 길을 가다 보면 저 뒤에는 무엇이 나올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은 계속 가야 한다. 저 코너길을 돌아서면 불운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다음에는 행운이 나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아직도 여름이 모두 지나가지 않았지만 추석이 지나면 확연하게 가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차 안에서 꿉꿉함을 참아가면서 돌아본 경천호길은 색다름을 느끼게 해주어서 좋았다. 어떻게 보면 편한 육신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구나, 필요조건일 뿐이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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