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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1. 2019

100주년 기념

3.1 운동 100주년 기념 구민 선언대회 

지난달 26일 대전 서구 보라매공원에서는 서구청과 대전시민들이 모여 삼일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구민 선언대회가 열렸다. 삼일운동은 일본에 항거해서 일어난 운동보다 이 땅이 이 나라가 바로 모든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하는 것을 이끌게 된 이면에는 삼일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3 교단이 일체가 되어 일으킨 의미와 삼일은 삼위일체의 철학적 요건이 들어가 있으며 영토와 인민, 주권의 3 요건으로 일국가가 성립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삼일운동의 100주년을 기억하는 일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당시 독립선언이나 운동을 방해한 사람들은 친일파뿐만이 아니었다. 그 부류를 구분해보면 매국 5적을 비롯하여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았던 골수 친일 매국노와 친일관료그룹, 대지주 등 친일 매판자본가들, 종계의 일부 세력, 일제로부터 은사금을 받은 유생들이 반대했다. 

"힘으로 복종시키지 않으면 독립 소요가 더욱 거세질 터이니, 반드시 무력으로 복종시키라" - 이석주

"일부 불령 한 도배의 선동을 가차 없이 처벌할 것" - 함경남도지사 이규완

"조선 독립을 선언한 자는 천황폐하의 은덕을 망각한 무리" - 김기현

태극기가 만들어졌으며 삼일운동을 일어나게 한 사건인 병탄 조약은 8월 29일 '조선총독부 관보'에 게재되고 공포가 된다. 이로써 1392년 7월에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 왕조는 1910년 8월 29일에 융희 황제가 국권을 빼앗기면서 27개 519년 만에 멸망하게 된다. 

병탄 조약문(국치 조약문)

"일본국 황제폐하 및 한국 황제폐하는 양국 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하며 동양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고자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함이 선책이라고 확신하고, 이에 양국 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하여 일본국 황제폐하는 통감 테라우치 미사타케 자작을,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의 전권위원으로 임명했다."

일본의 강제병합이 이루어지게 된 이면에는 국가 재정의 3대 요소인 전정, 군정, 환곡이 부패하고 크고 작은 관직이 모두 거래되고, 과거제도는 '입도선매'를 통해 국정이 온통 썩어 문드러진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차근차근 친일파 등과 함께 일본은 한반도를 장악해나간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마지막에 그려진 대한제국의 군대는 1907년에 해산되었고 1909년에는 사법권과 감옥 사무를 빼앗기고 1910년에는 경찰권이 빼앗긴 다음에 바로 운명의 날이 8월 22일에 밝혀졌다. 

일제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그간의 죄상을 기록한 조선총독부의 모든 기록문서를 소각했다고 한다. 따라서 위안부로 끌려가 희생된 한국 여성들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추정은 해볼 수 있다. 일본말로 '니꾸이찌'는 일본군 29명 앞에 위안부 1명의 비율로 충원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기반으로 볼 때 5~7만 명 정도가 위안부로 동원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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