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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6. 2019

길 따라 의지 따라

가은읍에 자리한 이강년 생가

모든 종교나 학문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이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유교 역시 폐해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많지만 조선 후반부로 가며 덕과 도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약간의 배움을 통해 어설픈 신분제를 주장하고 남녀 간의 불평등을 야기했다. 삶은 길 따라 의지 따라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이 가장 좋다. 

문경의 이곳저곳을 가로질러가다 보면 이렇게 철로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기차가 아닌 사람이 직접 밟아서 돌아다니는 레일바이크가 돌아다니는 공간이다. 도로 하나 철길 하나 쉽게 깔리지 않듯이 마음의 길 역시 쉽게 깔리는 것이 아닐진대 혼란의 시기에는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가은읍의 한 켠에는 이강년 생가지가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 외지에서 가은으로 오는 사람들은 가은역에서 많이 내렸다고 한다. 가은읍의 간이역인 가은역은 1956년 개통할 때만 해도 가은 석탄산업의 중심인 '은성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가은역은 전국 100여 개 간이역 중 폐선되어 용도가 없거나 50년 이상된 전국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는데 그중에 하나였다. 

당시에 강대한 일본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일본이 망하겠느냐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조선은 조선의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니 일본에 붙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를 올바르게 성찰하고 청산하는 것은 지식인이 당연히 해야 할 몫이다. 그것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지만 한국은 식민지 역사 청산에 실패하였고 역사왜곡은 일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한국인에 의해 더 왜곡되기도 했다. 이강년 생가는 1994년에 'ㄱ'자형 목조 기와집 2동과 초가집 1동으로 복원되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90호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교적 한국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운강 이강년은 김구, 윤봉길, 안중근 등과 함께 대한민국 건국훈장 을 추서 받은 22인 중의 한 분이다. 올해 유관순 열사가 받은 대한민국장이 바로 그 최고등급의 장이다. 1962년에 독립장이 추서 되었으나 훈격이 3등급에 불과하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건국훈장은  1990년에 〈상훈법〉이 개정되면서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5등급이 되었다. 백범 김구를 비롯해 안창호, 안중근 의사 등 30명은 1등급(대한민국장), 신채호 선생 등 93명은 2등급(대통령장)에 추서 됐다. 

이강년 생가 있는 마을은 조용한 곳이다. 

이 마을 주변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자라면서 푸르다. 물 자체는 동과 서의 구분이 없기는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항상 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때론 그렇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본다. 사람이 악하게 되는 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한 본성을 지키고 기르는 후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의지가 이끄는 대로 선한 본성에 의해 이 땅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의 흔적을 만나보며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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