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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17. 2019

광고란

아이디어를 넘어서야 하는 일들

광고에 휩쓸리지 편은 아니지만 광고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잘 알고 있다. 광고는 TV 혹은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모델이나 그 생활처럼 편해지거나 멋지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는 말은 광고주체가 의도한 바대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지역별로 본격적으로 지역신문사들이 지역의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광고도 싣게 되는데 시대별로 적지 않은 변화를 겪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대전에는 전시 속보판으로 대전일보가 창간이 된다. 지금까지 70여 년간 대전 지역민들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리해 왔다. 인터넷신문 등이 등장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지만 오랜 기간 대전일보가 지면 광고의 주력으로서 자리한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해외에서는 1980년대부터 대한민국은 1990년대부터 라이프스타일 광고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그 메시지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 신문사 중에서 소셜 채널이나 온라인 채널을 같이 운영하지 않는 곳은 없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지면으로 전해지는 광고는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950년 대전의 일상 엿보다, 훔치다전에서는 1950년대 상실의 시대, 1960년대 건강부터 챙기세요. 1970년대 도약의 시대, 1980년대 메이드 인 대전, 1990년 환희와 절망으로 이어졌다. 

대전에서 오래 사신 분이나 대전에 이사를 와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전에서 시대별로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은 신문으로 접해오고 때론 직접 만나보기도 했다. 1990년대 대전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둔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던 때 1993년에 세계엑스포가 열렸고 1997년에는 IMF 구제금융으로 대전과 충청남도를 아우르던 충청은행이 사라졌다. 

대전일보가 지면에 실은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4.19 혁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4.19는 1960년 4월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했던 운동이다. 

민심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이반 되어 있었으므로 대규모의 봉기에 필요했던 것은 도덕적 분개라는 공통된 감정을 점화시켜줄 수 있는 사건만 있으면 되었는데 그것이 4월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공권력인 경찰력이 자유당의 주요 골격을 이루어왔다는 것은 4·19 혁명 후 경찰력의 마비에 따라 자유당이 하룻밤 사이에 붕괴됨으로써 명백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광고는 보통 기업을 위해 상품을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시사성광고도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빨간 옷의 뚱뚱한 산타 할아버지가 자리 잡은 것은 1931년에 처음 시작된 캠페인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잡지 광고에 산타가 빨간 옷을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부터다. 많은 회사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데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 지금은 브랜드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항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광고 since 1950

대전의 일상 엿보다, 훔치다

Lab MARs  2019.4.15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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