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최용신기념관
충청남도 당진 역시 글을 자주 쓰던 곳이어서 심훈과 심훈기념관은 여러 번 가본 기억이 난다. 심훈을 상징하는 작품은 바로 상록수다. 상록수는 애국계몽운동가였던 최용신 선생이 있었기에 탄생한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용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접한 것은 올해였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몸은 샘골과 조선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던 최용신은 교육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이다.
안산에서 태어나 그 기념관이 건립이 되어 있는 최용신은 위대한 사람이 되는데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
우연인지 모르지만 저 네 가지 중 하나도 해당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난은 그냥 감당하라 하고 교육의 중요성은 몰랐으며 큰 감동보다 억압이 있었으며 위인전기는 있지 않기에 접하지 못했던 그런 가정도 있다.
최용신 선생은 YWCA의 농촌 파견교사로 임명되어 일제강점기인 1931년 10월 경기도 화성군에 파견되어 농촌에 있는 농민의 아픔을 함께하고 농민의 자식을 민족의 동량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지금도 교육의 중요성은 언급하지 않아도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최용신은 사회가 발전되고 농촌이 계몽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기반이 되어야 된다고 확신하였다.
최용신의 이야기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등장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최용신 선생은 병석에 눕던 그날도 교단에 섰다.
"내 몸뚱이는 샘골과 조선을 위해서 생긴 것이다. 그 샘골 그 조선을 위해서 일하다가 죽는다 한들 그게 무엇이 슬프랴!"
일제의 강제병합이 있기 바로 전해인 1909년 8월 12일에 태어난 최용신은 불과 26세의 나이에 교육에 헌신하다가 순직하였다. 그녀는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샘골 주민에게 커다란 충격과 슬프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마다 제자들과 마을 사람들은 최용신을 잊지 않고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