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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4. 2020

조선의 걸작

꿈을 화폭에 흩뿌린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개인적으로 많은 꿈을 꾸지만 깼을 때 기억이 나는 것은 많지가 않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기억이 날 때가 있다. 그것도 바로 일어나서 글을 쓰지 않는다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금세 잊힌다.  그래서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 순간의 기억을 담기 위해서 말이다. 꿈이나 몽롱한 상태에서 생각나는 기억을 글로 표현해본 적은 있지만 그림으로 그려본 적은 없다. 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약 18만 2천 여 점 중  가장 많은 숫자인 7만 6천 여 점이 일본에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몽유도원도다. 

충남 서산에는 안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크지는 않은 규모지만 안견의 작품과 그의 이야기가 그림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한국적 산수화풍을 창출한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로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도화원(성종 때 도화서로 개칭)에 소속된 화원이었던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르네상스형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에 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안견은 안평대군이 후원자였다. 시와 글씨, 그림에 능했고, 중국 고전 회화에 박학했던 안평대군은 그를 아꼈다. 


“우리 조정에 유명한 화가 한 사람이 있는데, 안견이라 한다. 성이 총민하고 정박(精博)하며, 옛 그림을 많이 보아 그 요체를 모두 얻고 여러 대가들의 좋은 점을 모아 총합하고 절충하였다. 옛것으로부터 빌었지만 그와 필적할 만한 사람은 얻기 어렵다.” - 신숙주

 1447년 4월 20일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도원을 꿈꾸고 나서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했던 몽유도원도는 왼편 하단부의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부터 오른편 도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의 전체적인 경관이 짙은 안개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 잘 조화된 것이 특징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림보다 지금의 댓글 같은 표현처럼 찬시와 찬문이 더 유명세를 만들어냈다. 안평대군의 제목 글씨와 제시에 이어 당대를 주름잡던 명사들의 찬시와 찬문이 한데 모여 20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추정 작품이 아니라 확실한 안견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에 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유일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조선의 걸작이라고 부를만하며 산수화의 세계를 열었다고 칭찬을 받을만하다. 

안견기념관에 자리한 몽유도원도는 원래 크기보다 3배 정도 확대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특이하면서도 독특하게 뻗어 있는 산세, 복숭아 꽃밭이 늘어선 갈래길, 먼 산을 감싼 안개 등 꿈속 환상의 세계가 몽환적이고도 고요하게 표현되었는데 왼편 하단부부터 오른편 상단부로 대각선을 따라 전개되는 방식을 취했다. 왼편은 현실 세계, 오른편은 꿈속의 도원경이다.


일본에 원본이 있는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跋文)과 시문 이외에도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같은 당시의 쟁쟁한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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