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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Feb 18. 2020

70년

이념, 성장, 분배, 갈등, 격차의 시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독일은 그 힘을 빼기 위해 분단하였지만 동양의 전범국가 일본이 분단되는 대신에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인지 미국과 소련 등의 계산 아래 이념으로 땅은 양분되었다. 태평양을 건너 먼 곳에 자리한 미국과 바로 땅을 맞대하고 있는 소련과는 그 입장이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한반도에서 신탁통치를 끝내고 빠져나간다는 결정은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전쟁의 억제력이 사라진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불씨가 댕겨졌다. 당시 비대칭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던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욕망처럼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준비 안된 남한에서는 군인들보다 더 많은 희생이 학도병들에게서 발생하였다. 경북과 경남 일대는 마지막 보루로 북한군을 저지했다. 칠곡군의 왜관역은 소년병의 신분으로 사격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었다고 한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반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두 세대가 모두 지나갔을 시간이며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시작된 상반된 이념은 한강의 성장과 수출을 통한 분배, 세대 간 갈등, 빈부의 격차로 시간이 이어졌다. 아직 우리는 한국전쟁의 그 흔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칠곡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려 있는 벽화와 사진이 옛 철도길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죽음의 사선을 넘어 보급을 했던 지게부대는 미국인들에게 영어 알파벳 'A'와 닮은꼴이라고 하여 그들을 "A-Frame Army"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압축성장을 통해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정신적인 유산을 잃어야 했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아픈 이별이 있지 않았을까.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의 실화와 최승갑 일병의 유품라고 한다. '형제의 상'은 실제 형제였던 박규철 소위(형)와 박용철 하전사(동생)의 이야기다.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 출신인 형제는 이북 땅에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형만 월남하고 동생은 남은 상태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왜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왜관 터널도 자리하고 있다. 애국동산이라고 명명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70주년인 2020년에 가장 먼저 가본 곳은 등록문화재 제285호로 지정된 구 왜관 터널이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석조와 붉은 벽돌로 만든 말굽형 모양의 터널로 1941년 경부선 복선화 사업 이후로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전쟁이 터진 지 어언 70년이 지났다. 한국전쟁 당시 그나마 전쟁의 화마에 적게 휩싸인 곳은 칠곡군을 중심으로 경남 아래쪽일 수밖에 없다. 전격전을 통해 내려온 북한군은 많은 화력을 쏟아부었다. 왜관역(倭館驛)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있는 경부선의 철도역으로 1905년에 낙동강 동변 왜관의 설치와 더불어 건설되어 영업을 시작하였다. 왜관을 상징하는 왜관 터널을 비롯하여 왜관역은 여객 수송에서는 칠곡군의 5개 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70주년이 가장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이 칠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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