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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5. 2020

문경의 봄

2020년 일상의 변화를 만들다. 

최근에는 실내보다 실외, 사람이 모이는 곳보다는 넓게 공간이 탁 트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쨌든 간에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언젠가는 어느 정도는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사람이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봄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보기 위해 오래간만에 문경새재를 찾았다. 예전보다 확실하게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문경새재에 자리한 박물관 뒤로 멋진 산세가 이곳을 휘어 감고 있는 모습이 청명한 봄 날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모두 휴관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문경의 매력이 알 수 있다.  

작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문경 생태 미로공원도 정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는 않았는데 일부 방문객들만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돌다리를 건너서 넘어가면 문경 생태 미로공원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예전에 한 번 문경생태미로를 모두 통과해보았기에 굳이 다시 도전해보지는 않는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참 맑은 곳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투명하게 마음을 비추어주는 것만 같다. 

돌다리를 건너서 넘어가다가 멈춰 서서 문경새재를 바라본다. 문경새재의 이름은 많은 유래가 있지만 새로 낸 고갯길이라는 이야기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옛날에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간다는 것은 상당한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즉 돈이 없으면 과거를 보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가면서 먹어야 하고 공부도 하면서 과거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하인을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단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가장 단축 길인 문경새재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작년에 거의 완료가 되어서 문경 생태 미로공원을 돌아본 기억이 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문경새재는 태종 13년(1413)에 개통된 길이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기에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문경새재에서 방어를 했으면 좋으련만 신립 장군은 이곳이 아닌 충주까지 가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에게 대패하였다. 

문경새재의 초입에 만들어진 생태 미로공원 전망대는 작년에는 없었는데 올해 가보니 만들어져 있었다. 위에 올라와서 보니 미로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서 시장의 변화를 보고 독점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을 농단이라고도 한다. 시험의 모든 것은 결국 글에서 시작하고 글에서 끝이 난다. 

수많은 선조들의 감흥과 애환을 떠올리며 새재를 걷는 것은 매우 깊은 감동과 울림이 있었던 문경의 옛길을 걸으면서 매년 봄을 느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과거를 보기 위해 수많은 선비가 지나던 길이며 임진왜란 이후에 전쟁 대비를 위해 서애 유성룡이 관문의 설치를 주장하여  일자형의 성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령 산성이 축조되었다. 그리고 세 개의 관문이 만들어졌는데 첫째 관문은 주흘관(主屹關), 두 번째 관문 조곡관(鳥谷關), 마지막 관문 조령관(鳥嶺關)으로 새재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문경의 봄은 왔건만 사람이 느끼는 봄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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