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와 노무현의 이야기
벌써 11년이 지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이 말이다. 노무현이 진심으로 원했던 시기는 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안전망이 갖추어지는 사회는 아주 조금씩은 오고 있다. 일명 보수(한국에서는 극우나 다름없는)가 진보를 공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깨끗하지 않음으로 털고 다른 하나는 망신주기로 무능력함을 부각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는 검찰에 의해서 추진되고 후자는 언론에 의해 추진이 된다. 보수인사의 온갖 불법은 있음을 느끼지만 검찰이 털지 않으니 국민들이 알기가 힘들다. 보수정권의 아무 의미 없는 정책은 언론이 과대 포장하고 엄청난 실적처럼 홍보해주면서 무언가 삶이 좋아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1979년 김재규와 2009년 노무현은 보수 혹은 군사정권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죽어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박정희와 육사 동기였으며 문학을 좋아했던 김재규는 전두환이 발표한 것처럼 허황되고 정권의 욕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그가 박정희를 죽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했던 방법이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두환이 발표했던 것과는 다르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아주 무능력하면서 차지철과의 충성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처럼 그리며 망신주기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빠르게 사라지게 만들었다.
박정희와 김재규는 모두 구미에서 태어났다. 직접 가봐서 잘 알아는데 박정희는 태어난 곳을 마치 성지처럼 포장해두었지만 김재규가 태어난 선산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김재규와 노무현의 공통점은 당시 절대권력을 바꾸어 국민에게 돌려주려고 했던 것이다. 김재규라는 유신의 심장이라는 박정희를 노무현은 드러나지 않는 절대권력 검찰과 언론을 겨냥하였다.
정치는 낭만적이지도 않았는데 이 둘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며 협치와 공존을 꿈꾸었다. 망신주기를 통해 김재규는 잊혔고 논두렁 시계 등으로 명예가 실추된 노무현은 서민적이었기에 바보가 아니라 무기력하면서 욕심까지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 김재규는 1심 군사법정에 섰을 때 변호사들이 변호를 했지만 전두환의 보안사가 그의 형제자매를 어떻게 할지 협박하면서 모든 변호사를 보낼 것을 종용하였다. 장남이었던 김재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형제자매를 살릴 생각으로 모든 변호인단을 거부하게 된다.
대통령의 자리에 내려오고 나서 주변 인물을 검찰이 있는 대로 압수 수색한 가운데 명예가 실추될 대로 실추된 노무현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봉하마을을 안 가본 사람들도 많지만 가보면 참 살기가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화롭지 않지만 건축적으로도 잘 지어졌고 동선이 생활하기 편하게 만들어졌다. 이곳을 가본 적도 없는 어머니는 언론에서 말한 대로 아방궁이라는 말을 그냥 믿으셨다. 사적인 공간을 제외하고 모두 공개되어 있어서 김해의 열린 여행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