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역 (敬天驛)

조선시대 삼남을 연결했던 교통의 요지

용두천이라는 지방하천이 흘러가는 조그마한 공주의 마을은 오래전에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다. 그렇지만 역참이 있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읍지나 지리지 등에 기록이 남아 있어 추정해볼 수 있다. 공주에서 논산의 노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조선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의 남쪽 40리 익귀곡면에 있으며 기마 7 필, 복마(卜馬) 8 필, 노(奴) 37명, 비(婢) 18명이 있었다는 것이 여지도서의 기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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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논산과 공주를 수없이 오가지만 이곳을 넘어서 논산의 노성으로는 처음 가본다. 우연하게 경천역이라는 옛 역참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말은 상당히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암행어사 역시 마패를 보면 말의 수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역참에서 말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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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역, 연산현의 평천역과 함께 일신도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경천역과 관련하여 이곳에는 충청감사 심의신의 선정비, 사음 박준혁의 시혜비, 김교준의 불망비 등 비석 3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경천교 옆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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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역은 세조 때 성환도(成歡道)[조선시대 충청도 직산의 성환역을 중심으로 한 역참]에 병합되어 성환도에 속한 22개 역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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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을 베푼 관리를 위해 그 지역에 세운 비석인 선정비,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세우는 비(碑)인 시혜비,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인 불망비는 모두 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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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흐르는 용두천은 금강 수계의 본류인 금강의 제1 지류 미호천의 제2 지류인 병천천으로 유입하는 지류 하천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용두리(龍頭里)를 지나서 용두천(龍頭川)이라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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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은 역참 등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전을 포함하여 주변 지역은 공주목관할로 들어갔다. 이 역참이 있던 경천로는 지금의 국도 22호선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공주 중심가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시작되어 천안과 공주를 잇는 차령로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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