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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7. 2020

경천역 (敬天驛)

조선시대 삼남을 연결했던 교통의 요지

용두천이라는 지방하천이 흘러가는 조그마한 공주의 마을은 오래전에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다. 그렇지만 역참이 있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읍지나 지리지 등에 기록이 남아 있어 추정해볼 수 있다. 공주에서 논산의 노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조선시대 교통과 통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의 남쪽 40리 익귀곡면에 있으며 기마 7 필, 복마(卜馬) 8 필, 노(奴) 37명, 비(婢) 18명이 있었다는 것이 여지도서의 기록에 있다. 

개인적으로 논산과 공주를 수없이 오가지만 이곳을 넘어서 논산의 노성으로는 처음 가본다. 우연하게 경천역이라는 옛 역참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말은 상당히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암행어사 역시 마패를 보면 말의 수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역참에서 말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역, 연산현의 평천역과 함께 일신도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경천역과 관련하여 이곳에는 충청감사 심의신의 선정비, 사음 박준혁의 시혜비, 김교준의 불망비 등 비석 3기가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경천교 옆으로 옮겨졌다. 

경천역은  세조 때 성환도(成歡道)[조선시대 충청도 직산의 성환역을 중심으로 한 역참]에 병합되어 성환도에 속한 22개 역 중 하나가 되었다. 

선정을 베푼 관리를 위해 그 지역에 세운 비석인 선정비, 베풀어 준 은혜에 감사하기 위하여 세우는 비(碑)인 시혜비,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인 불망비는 모두 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공주를 흐르는 용두천은 금강 수계의 본류인 금강의 제1 지류 미호천의 제2 지류인 병천천으로 유입하는 지류 하천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용두리(龍頭里)를 지나서 용두천(龍頭川)이라 불렸다고 한다.

공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은 역참 등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전을 포함하여 주변 지역은 공주목관할로 들어갔다. 이 역참이 있던 경천로는 지금의 국도 22호선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공주 중심가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시작되어 천안과 공주를 잇는 차령로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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