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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5. 2020

채제공

명분과 절의를 지킨 정치가

조선시대에 훌륭한 군주였다는 정조는 군자학이나 성리학의 기준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제왕이었다. 자신의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벽파 집권세력에 대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 대신에 간접적이면서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기만과 독단을 적당히 섞어서 대응하기 힘들게 하였다. 현실적인 정치가이며 박학다변의 국왕이었던 정조는 의도를 분명히 밝히면서 상황에 맞는 말을 꺼냈다. 그런 정조에게 당쟁 속에서 탕평을 실천한 재상이었던 채제공이 있었다. 

 두 고을의 현감을 지냈으면서도 재산이라고는 집 한 칸뿐이었던 아버지 채응일의 아들로 태어난 채제공은  그는 정승의 반열에 올랐을 때 어린 시절 겪은 가난을 잊지 않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고안한 사람이다. 그는 영조대에 벼슬을 시작하였는데 영조대에는 유명한 어사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박문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채제공이다. 채제공은  1753년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어 균역법의 시행 실태를 조사하고 이로 인한 폐단과 시정안을 진언했다. 

청양과 보령의 경계에 오면 상의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채제공 선생이 64세일 때 도화서 화원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가 걸려 있다. 상의사는 현재 2020년 보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내삼문 해체 보수공사와 함께 주변 배수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10월에 완료될 예정이다. 

모든 공사에 있어서 수평을 맞추는 것은 중요하다. 오래간만에 레벨을 본다. 요즘에는 오토 레벨을 대부분 사용하는데 조금은 연식이 되어 보이는 레벨이다. 레벨 측량은 고저 측량 또는 수준측량이라고 하는데  측량기기 중에서 다루기가 쉬운 편이다. 영조대에 시행된 균역법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박문수도 양역의 폐단을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이에  1752년(영조 28) 어염세(魚鹽稅)·선무 군관포(選武軍官布)·은여결세(隱餘結稅)·결전(結錢) 등의 새로운 세금을 통해 보충하도록 하는 내용의 균역법이 시행된다. 균역법은 양민의 부담을 거의 줄여주지 못했다. 감필을 통해 농민 부담을 약간 줄여준 데 불과하였던 것이다. 균역법 실시 직후 바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삼정(三政) 중의 하나로서 군정의 문란이 생긴다. 

체재공은 영조에 이어 정조대에도 개혁정치를 충실히 보좌하였다. 정조 후기의 경제 정책은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채제공은 후기에 명재상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정계에서 빛을 본 사람들은 정약용, 이가환,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다. 지금도 자주 이덕무가 쓴 문장의 온도를 읽는다. 채제공은 정조의 가장 아픈 부위였던 사도세자의 문제를 거론하여 그의 아픔을 치유해주기 위해 상소를 올렸다. 이에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노론 쪽에서는 채제공을 탄핵했다. 

노론 등의 탄핵으로 잠시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기도 했지만 정조의 굳은 신임으로 말년은 비교적 조용하게 보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채제공이 세상을 뜨자 정조는 그를 세상에 좀처럼 나기 어려운 뛰어난 인물이라는 뜻의 ‘간기인물(間氣人物)’이라 칭송하였다. 상의사에는 희암 채 팽윤 공 蔡彭胤 公 영정이 영당에 모셔져 있으며 공은 평강 채 씨 시조 17 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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