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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7. 2020

사대부의 집 (第宅)

문간채 보수 중인 괴산 김항묵 고택

옛날에 양반이라고 하면 자신이 사는 집 한 채와 정자 한 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기본은 갖추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대부의 집중에 살림집과 정자가 같은 공간에 있는 제택(第宅)도 있었다. 특히 사대부의 집이라면 잘 만들어진 문간채 정도는 있어야 했다. 괴산의 김항묵 고택은 괴산군에서 발주하고 주식회사 홍대 건설에서 9월까지 문간채 보수공사 중이었다. 고택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보수기술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건설사 이름에서 정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괴산 김항묵 고택의 문간채는 적지 않은 크기다. 문간채가 큰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문 양쪽에 헛간이나 외양간, 머슴들의 거처를 연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문간채라고 한다. 농사 규모가 줄고 아랫사람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대문간에 방을 1-2칸 정도 들여 문지기 정도가 기거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간채가 규모가 있다는 것은 세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로 건설현장에 있어봤는데 당시 비계에 많이 올라가 본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가지고 비계에 올라가 본다. 건설 및 보수공사 등을 할 때 작업인부와 자재를 들어 올리고 받쳐주기 위해 쓰며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발판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받쳐서 만드는 것이 비계다. 

고택의 보수공사는 손이 많이 간다. 문화재는 지자체가 지원해서 보수를 하기 때문에 후손들은 비용 부담이 적은 편이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136호인 괴산 김항묵 고택은 일명 칠성 고택으로도 불리며 대문간채·중문 간 채·사랑채·곳간채·헛간채·안채가 남아 있다.  이 집터는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기(名基)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지리적인 조건이 좋은 곳으로 숲을 갖추고 있는 낮은 동산을 배경으로 양지바른 남향에 국(局)을 이룬 터를 점정(占定)하고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채가 있다. 사랑채나 중문채·대문채 등은 약 1백 년 전에 지어진 것이지만 이중으로 된 안채는 18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이다. 

베란다에 채소를 키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서 그런지 채소를 보면 관심이 간다. 요즘에는 집에서 어떤 것을 더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서쪽 끝에 곳간채가 따로 있는데 동북 편으로 남향한 사랑채가 一자형으로 한 대(臺) 정도 높게 놓여 있고 그 서편에 중문간채가 자리하고 있다. 

중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게 되는데 안채는 ㄇ형이 되어서 앞의 곳간채와 함께 트인 □자형의 배치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오면 안락한 느낌이  든다. 부엌 앞에는 온돌방을 만들어두었는데  ㄇ형 평면에서 서쪽 날개는 세로 세 칸인데 세 칸 전부를 부엌으로 만들었다. 요즘에는 부엌은 이제 삶의 공간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곳으로 자리하고 있다. 

조선에서는 문관 관료로서 4품 이상을 대부, 5품 이하를 사(士)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계층적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여론정치를 수행하는 등 역할을 수행했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도 계층은 존재한다. 정치나 사회생활에서 정통과 명분을 중요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살 수 있는 공존은 시대와 상관없이 중요한 가치다. 사대부의 제택이었던 김항묵 고택에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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