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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4. 2020

대화의 기술

단어의 조합이 많아야 부드럽다. 

사람이 있는 환경이 그 사람의 한계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그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극과 극의 대화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주변에서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아도 그런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자신이 아는 것의 한계와 단어가 얼마 되지 않는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을 선택한다. 대화의 기술에서 1~10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1과 5, 10 정도뿐이 없는 셈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사이코라는 표현을 한다면 적합할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환경에 노출이 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반경 1km 내에서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과 시사, 생각들이 노출되다 보면 그 표현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은 정보를 듣고 보고 생각하고 곱씹기 때문에 그 단어가 가진 의미에 수많은 함의가 담겨 있고 사회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너무 잘 안다. 똑같은 표현이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 툭하면 상대에게 쓰레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쓰레기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 아주 부정적이 의미로 사용되며 쓸모가 없고 상종을 못할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게 그게 기분 나쁘면 하는 일상 표현일 뿐이다. 그건 다른 게 아니고 틀린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고 사람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표현을 잘 못했다면 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도 그 함의적인 의미를 깨닫고 좋게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떠났을 것이다.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생각이 세밀하게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생각나는 대로 감정이 이끄는 대로 표현했던 사람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무척이나 갑갑하게 느껴진다. 보통 그런 표현을 쓰면 나올 수 있는 대처방법이 몇 가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계속적으로 나온다. 자신이 쓸 수 있는 센 표현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쓸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사람은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아니면 폭력적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보통은 남자에게서 이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 


호칭에서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나 화가 났을 때 욕을 하는 사람 역시 그렇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보니 대화방식이 그렇게 된다. 아니면 자신만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친한 친구들끼리 아무렇지 않게 뒤에 욕을 붙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욕을 하고서도 싸우지 않는 것은 오랜 친함이 아니라 그냥 저속함일 뿐이다. 화가 났을 때도 욕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딱 하나뿐이 없다. 내가 이 정도 화났음을 표현하는 정도일 뿐 그 결과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욕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저급해지는 것이며 상대의 자존감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화가 지속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화의 기술은 많은 단어의 조합과 생각 함의적인 표현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에서 나온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지만 조금씩 개선하려고 마음먹으면 개선될 가능성은 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이 문제가 있다면 빨리 사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응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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