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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1. 2020

꽃신 같은 풍경

통영의 화삼리 드라이브 길 

"나는 꽃신이 다른 사람에게 다 팔려 가기 전 한 켤레 가지고 싶었지만 꽃신 아닌 슬픔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는 먹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기 직전 길을 더듬어보는 눈초리로, 꽃신을 바라보았다. 꽃신이 세 켤레 남았을 때 나는 그곳에 차마 가지 못했다. 예쁘게 꾸며진 꽃신의 코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훌쩍 뒤돌아설 것 같아 더 이상 찾아 못 갔다." - 김용익의 꽃신

박경리가 있고 그 외에도 김용식, 김용익 같은 소설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통영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통영은 작품의 영감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다.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이 통영시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김용익의 묘소는 통영의 오촌이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꽃신하면 여성이 연상된다. 이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공통점이다. 그렇지만 남자가 꽃신을 신지 않아도 꽃신과 같은 풍경을 즐길 수는 있다. 김용익이 쓴 단편소설 꽃신을 생각하면서 통영의 화산리를 드라이브해보았다. 아름다운 풍광이 마치 그의 작품과 같아 보였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꽃신은 변화된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과 그의 딸, 딸을 사랑했던 백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때 귀중한 물품으로 취급받았지만 어느덧 아무도 찾지 않은 꽃신을 만드는 꽃신장이는  꽃신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 자부심으로 백정이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지만 반대한다. 

통영의 바다는 많이 가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은 처음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과거에 가치가 있었던 것이 현재에도 가치가 있지는 않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세상이다. 지금 보고 있는 풍경도 계속해서 변한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돌섬들이 적지가 않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날이 따뜻할 때 수영해서 가도 좋을 만큼 물결이 잔잔하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꽃신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꽃신장이네 집은 점점 가난해졌지만 청혼을 했던 백정은 부산으로 가서 고기를 팔아서 돈을 많이 모으게 된다. 

백정이 팔았던 고기와 이곳 통영에서 잡는 고기는 다르지만 찾아갔던 날에는 어부가 자그마한 배를 끌고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에는 무표정하지만 바다의 생활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본 꽃신장이는 더 늙고 약해졌으며 아무도 찾지 않는 꽃신을 팔고 있었다. 

저벅저벅 내려가서 바라보니 조금만 헤엄쳐도 닿을 거리에 돌섬이 보였다. 저 섬에 위쪽에는 좁은 땅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곳도 생물이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해에 그는 첫눈이 오는 날 꽃신장이의 좌판으로 가지만 꽃신장이와 딸은 지난 여름 폭격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사랑과 그리움은 누구나 가지는 감정이다. 시간이 지나고도 생각날 것 같은 화삼리 풍광을 눈에 담아본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오촌이라는 곳에 오면 소설가 김용익 묘소로 가는 길이 나온다. 김용익 묘소는 그냥 평범하게 조성이 되어 있다. 

꽃신을 쓴 김용익 묘소로 가려면 오촌(3038)으로 가면 된다. 화(靴)를 만드는 화장(靴匠)과 혜(鞋)를 만드는 혜장(鞋匠)을 통합하여 화혜장이라고도 불렸던 꽃신장이는 순우리말로 갖바치라고 했는데 통영에는 공방이 모두 모였던 적이 있기에 작가는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옛날 꽃신은 매우 귀중하게 취급이 되었으나 백정은 천하게 생각되었다. 적어도 꽃신 같은 풍경은 누구나 느끼고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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