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남포(藍浦) 위에 서다.
충남의 서남부 저산팔읍(苧山八邑) 지역의 모시와, 남포(藍浦) 지역의 벼룻돌, 서북부 내포(內浦)지역의 해산물 등은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특산물이 알려졌던 때에 이곳은 사람의 인기척이 많았던 곳이었다. 세상은 때론 복잡하고 세상사는 예측할 수 없이 자주 바뀐다. 동양인들은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스스로를 환경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인문학은 사람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지향점과 다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이야기가 인문학이다.
규모의 경제로 인해 모든 것의 기회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다시 사람을 끌어들인다. 인문학에 기반하여 지역에 예산을 배당해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다. 이제는 면단위에는 주민자치센터가 대부분 만들어져 있지만 거주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고령이라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개화가 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양문화가 대부분의 문화를 채웠지만 그 한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자세가 너무나 다른 것이다. 특히 개신교와 클럽 등의 문화는 서양문화가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순간을 즐기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한다는 그들의 문화는 이미 뉴스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양인들은 사물에 초점을 두고 주변 맥락을 무시하기에 사건과 사건 사이의 관계에 덜 민감하다.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남포면에는 남포저수지가 있는데 살짝 살얼음이 얼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강우, 폭설, 천둥, 번개, 지진 등 기상재해(氣象災害)는 물론 해, 달, 별자리 등의 변화 등 모든 천기(天氣)의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었는데 남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도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읍성은 도심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읍성의 형태가 비교적 잘 남아있는 남포읍성도 그런 곳 중 한 곳이다. 읍성 안에는 동헌과 내아, 객사 등 기본적인 관아 외에 사직단, 향교, 향청, 창고, 옥 등의 건물을 지었는데 도시의 방위와 치안, 행정을 위해 고을을 둘러싼 성곽(城郭)을 말한다. 신 증 동국여지승람(1530)에 의하면 조선 성종 때, 전국 330개의 행정구역 중 190개가 읍성이 있었고 그중 179개소가 석축 성이다.
지방의 한적한 곳을 가면 조금만 손대면 앤틱스러운 공간이 탄생할 수 있어 보이는 건물들이 있다. 권리관계와 매입이나 운영 등에 대한 정보를 체계화한다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남포면과 남포읍성, 남포저수지를 둘러보고 기찻길 위에 섰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생각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우리는 결과만을 놓고 판단한다. 그전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결과 이와의 다른 결과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기찻길 위에 있던 남포역(Nampo station, 藍浦驛)은 2009년에 폐역이 되었지만 과거 남포선이 분기하던 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모든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다. 남포선 운행 당시에는 인근 보령 탄전에서 생산하는 무연탄을 전국 각지로 발송하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