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장미의 여자

기억난 삶의 뒤틀림

집이란 건 그곳을 가꾸는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담길 때 비로소 고요하고 내밀한 개인의 안식처이자 관계와 교류의 장으로 완성된다는 펜션 여주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연희가 생각하는 그림 역시 그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생각과 사상이 담길 수밖에 없다. 이 펜션은 안으로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 더 좋았다. 공간과 풍경, 음악, 음식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가구와 주인이 오디오를 좋아하는지 스피커까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시간은 5시를 넘어가서 해가 건너편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가 길어지긴 했지만 산속에서는 도시보다도 해가 조금은 더 짧았다. 직접 키운 채소와 특별하게 선별된 고기, 숯까지 모두가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딱 적당하게 익은 김치는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었다. 동창 일행은 무척 만족해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특히나 식사 후에 나온 올해 수확한 보리로 만들었다는 버섯 보리 샐러드는 화룔정점이랄까.


바베큐장은 펜션의 실내공간과 연결되어 있기에 화장실로 이동이 수월했다.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덧 해는 저 건너편으로 넘어가버렸다. 조명이 있어서 불편함은 없었지만 남자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동욱이는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면서 거실에 있는 LP장식장을 보게 되었다. 족히 1,000장은 넘을 듯한 LP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야 여기 좀 봐봐. LP판이 정말 많다." 술에 취했는지 아무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펜션 여주인과 이야기 룰 나누고 있었다. "버섯 보리 샐러드는 처음 먹어봐야. 이거 자연송이죠?" 수경은 물었다. "흔히 보는 새송이 버섯이 아니라면 모두 자연송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지욱이와 경덕이는 직접 증류했다는 사과소주의 맛에 푹 빠져 있었다. 게다가 오크통을 직접 사서 그곳에 숙성했는데 5년 산답지 않는 풍미에 술 마시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은 비싼 값을 지불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그 비용도 아깝지 않았다. 한편 동욱이는 안에서 LP장식장에 있는 노래들을 살펴보았다. 풍족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이 팝송 등에 익숙했던 그였다. 술에 취했지만 자신이 좋아했던 노래쯤은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의 눈에 좋아했던 가수가 들어왔다. 그건 레드 재플린이었다. 레드 재플린 하면 명실상부한 20세기 록의 전설이 아닌가. 그중에서 'Immigrant Song'을 가장 좋아했었다. 거의 7년 만에 이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주변에 턴 테이블을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LP판을 꺼내서 턴테이블의 바늘을 올려두었다. 음악은 펜션의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조용한 공간에서 음악이 퍼져나가자 모두 무슨 음악인지 귀를 기울였다. 음악을 듣던 지욱이는 "아~ 동욱이가 틀었나 보네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락에 미쳐 있었잖아. 그중에서 레드 재플린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아."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는 눈동자가 멈추어버리면서 주먹을 쥐었다. 음악의 소리와 함께 펜션 여주인과 친구들의 대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거나하게 취해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방에 들어가서 잤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여자들만이 펜션 여주인을 도와서 정리해주었다. 남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여자들은 차례료 욕실에 들어가서 씻은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가서 누웠다. 새벽 세시쯤 되었을 까. 그녀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손에는 주사기가 하나 들려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1층의 남자 동창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의 문은 잠겨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잠자고 있는 동욱이에게로 가서 발가락 사이에 주사기 바늘을 꽂았다. 그리고 천천히 주사기에 있는 주사액을 몸에 집어넣었다. 주사액이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용하게 열려 있던 창문의 걸쇠를 걸고 나오면서 방문의 손잡이 잠금장치를 누르고 소리가 안 나게 닫았다. 그리고 조용하게 2층으로 다시 올라서 친구들 옆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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