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한반도의 기후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오는 일이 잦아졌다. 이날 밤 펜션이 있는 지역에서 수 km 반경에는 수십억 개의 구슬 같은 물방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펜션으로 들어오는 곳에 놓여 있던 다리가 유실되었고 곳곳에 세워져 있던 통신사의 중계기도 쓰려졌다. 흙이 유실되어 흘러내려가면서 원래 알았던 지형과 많이 달라 보였다. 갑작스럽게 내린 소나기에 펜션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잠에서 깼다. 다행히 펜션은 산을 등지고 있지 않았기에 안전해 보였다. 먼저 일어난 연희는 지수와 수경을 깨웠다.
"연희야. 무슨 일 있어?" 수경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물어보았다. 연희는 일어나서 전원 버튼을 눌렀으나 불이 켜지지 않았다. "지금 내리는 비 소리 들려? 전기가 잠시 끊겼나 봐." 지수도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엄청난 비에 달도 가려진 듯 창에서 들어오는 빛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때 펜션 여주인이 촛불이 든 조명 무드등을 들고 올라와 문을 열었다. "괜찮아요? 깜작 놀랐죠?" 어둡던 방이 주변 환경과 사람을 인식할 만큼 밝아졌다.
남자들의 방에는 남편이 조명 무드등을 들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남자들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이렇게 쏟아지는 비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번 문을 두드리자 경덕이 먼저 일어났다. 마신 술로 인해 깨질듯한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면서 친구들을 깨웠다. 지욱이는 일어났으나 동욱이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힘차게 흔들어도 일어나지 못하는 동욱이를 보고 지욱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동욱의 목에 검지와 중지를 대보았는데 맥박이 느껴지지 않았다. "경덕아 지욱이 무언가 이상해.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그 말에 깜짝 놀란 경덕이는 술이 깬 듯 동욱이의 손목에 손을 대보았다. 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어요? 지금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깨웠어요." 경덕이는 일어나서 문을 열었는데 잠금이 풀리는듯한 소리가 났다. 어제 술에 너무 취해서 잠그고 잤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촛불을 든 남자가 문 앞에 있었다. "큰일 났어요. 동욱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요." 깜짝 놀란 듯 남자는 들어와서 동욱이의 코밑에 손을 대보았다. "우선 현장을 보존해야 하니 둘은 바깥의 거실로 나 가계세요." 경덕과 지욱이는 남자의 말에 바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4~5개의 촛불이 투명한 유리 같은 곳에 켜져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남자는 방에서 나와 두 명을 쳐다보았다.
"저희가 한 것 아니에요. 저희가 무슨 이유로 동욱이를 죽이겠어요. 지욱아 그렇지 않아?" 지욱이도 적지 않게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저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고요." 남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문은 우선 안에서 잠겨져 있었어요. 우선 112로 신고는 해야겠어요." 전화의 패턴을 풀고 전화기를 들었으나 수신이 불가하다는 표시가 떴다.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인해 통신사 기지국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비가 끄치면 연락을 해야겠어요." 이때 위층에서 펜션 여주인과 여자들이 내려왔다.
"애들아 동욱이가 아무래도 죽은 거 같아." 경덕이가 여자들에게 말했다. "진짜? 거짓말 마. 갑자기 동욱이가 왜 죽어." 연희가 믿기지 않은 듯 물어보았다. 지수와 수경 역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짜야. 지욱이랑 나랑 확인해봤고 저분도 확인했어. 현장보존 차 우선 저 방에 놔뒀어." 남자는 말을 이었다. "제가 CPR도 해보았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내렸다.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펜션 여주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따뜻한 차라도 가져올게요." 연희가 같이 일어나면서 "제가 도울게요." 펜션 여주인과 연희는 주방으로 갔다. 지욱이는 문득 궁금한 듯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심장마비 같은 건가요? 그런 지병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는 못했지만 아주 적은 확률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확실한 것은 모르겠고요. 혹시 파텍필립 시계가 그 친구분 건가요?"
"예 맞아요. 엄청 비싸다고 그러던데요. 그리고 지욱이가 반지나 시계 같은 것은 잘 때 풀러 놓고 자는 버릇이 있어요." 남자는 지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태엽을 감아놓지 않았었나 봐요. 기계식 시계라서 손목에 차고 있지 않으면 태엽이 감기지 않거든요. 시계가 12시 34분에 멈춘 것으로 보아서 적어도 11시 30분에서 저희들이 깨운 3시 사이에 일이 생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