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삶의 마침표, 쉼표

마음으로 보는 눈

"여기까지 오는데 어렵지는 않았아요?" 은경이의 아빠는 온화한 표정으로 둘을 맞아주었다.

"그렇게 멀지가 않아서 오는 게 편했어요." 오빠가 먼저 말했다.

"이곳이 도시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풍치가 있어요."

"예 저도 이런 곳은 처음인데 괜찮은 것 같아요."

도자기를 굽는 곳 옆에 자리한 이곳은 책과 도자기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은 공간이었다. 도시에서 보던 한옥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계절이 여름을 향해 달려갈 때 아무 곳에나 피는 풀꽃의 계절 미감이 있다고 할까.


은경이 아빠의 인상은 말 그대로 도자기를 굽는 사람처럼 보였다. 희끗희끗한 긴 머리를 뒤로 묶고 편해서 입는 건지는 몰라도 마치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는 데워진 그릇에서 찻물을 비워내고 각자 앞에 있는 찻사발에 차를 따라주었다. 지영은 슬쩍 오빠가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향을 잠시 음미하는가 싶더니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도 조용하게 두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온화한 듯한 온도가 손끝에 전달되었다. 은은함속에 차의 맛과 향은 자극적이지 않았다.


"어때요? 차는 마실만한가요? 다 마셨으면 따라줄게요."

그녀는 자신의 찻잔을 앞에다가 내려다 두자 은경이 아빠는 채워주었다. 두 번째로 마시는 차는 첫 번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향이 더 진한 거 같아요. 오빠는 이런 차 많이 마셔봤어요?"

"응 나는 그냥 집에서도 많이 마시는 편이야."

"이건 좋네요. 도시에서는 이런 차보다는 티백으로 된 현미녹차 같은 거 마시거든요. 그런데요. TV 같은 데서 보면 도자기 같은 거를 굽다가 막 깨고 그러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그냥 똑같은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은경이 아빠는 그녀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지영이라고 했나요? 혹시 어릴 때 바이올린 같은걸 배워보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예. 저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안 계신 부모님이 여력이 없어서 배우지는 못했어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멋있거든요."

"10년 전인가요? 음악감독으로도 임명된 적이 있고 상도 많이 받았으며 콘서트만 열면 만석을 이루었던 바이올린 연주가로 조슈아 벨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 사람의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 여주자가 붐비는 시간에 워싱천에 있는 랑팡 플라자 역이라는 곳으로 가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지만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멈춘 사람은 단 7명뿐이었다고 해요."

"진짜요? 저도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영화음악이었지만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눈이나 귀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만 느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눈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많은 걸 놓치게 돼요."


그녀는 그 말이 묘하게 와닿았다.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보통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차를 마시고 나서 도자기를 굽는 흙가마를 둘러보았다. 도자기를 굽고 있지는 않았지만 유약이 발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요장을 돌아보았다. 어떤 것은 그릇과 찻사발이 되어 선보이겠지만 어떤 것들은 깨져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둘은 인사를 하고 나서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였다. 오빠가 데려간 곳은 기차가 지금은 다니지 않는 철길이 있는 곳이었다.


"와! 여기 경치 참 멋지다. 여기 지금은 기차가 다니는 거 아니에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마 이곳에 기차는 안 다녔을걸. 옛날에는 그냥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꾸며놨어. 관광객들 많이 오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쁜데요? 그런데 저 산에 있는 성은 뭐예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성인데 지금은 많이 보수한 거야. 고모산성이라고 부르고 있어."

"고모요? 친척 호칭 같은 건가요?"

"아니 무슨 할머니 신 같은 거야. 엄마 이야기로는 제주도에도 섬을 수호하는 할머니 신 이야기가 있대.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

"그런데 여기 앞에 물 하고 뒤에 고모 산성하고 마치 품어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거나 모두 이곳을 통과해야 했기에 요충지였대."


지영은 오래된 철로에서 자신의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오빠 보고 같이 찍자고 했지만 혼자 찍으라는 듯 손으로 사양했다. 오빠를 따라 올라간 고모산성에서 내려다본 문경은 지금까지 본 풍광중 다섯 손가락에는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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