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고려무장 인당장군 사당이 있는 당진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무장 하면 최영 장군이 대표적이지만 동시대에 최영 장군 같은 활약을 보여준 무장인 인당장군도 있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말 인당장군이나 최영장군 모두 비극적으로 희생된 것에는 공통점은 있다. 인당장군은 교동 인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름이 교동리다. 살아오면서 인 씨를 본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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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인당장군 사당이라는 충정사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중국 진(晉)나라의 인서(印瑞)가 신라 유례왕(儒禮王) 때 들어와 아찬(阿飡)의 벼슬을 하고, 그의 후손 인빈(印邠)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면서 교동부원군에 봉해져 교동인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나 교통인씨의 세보를 보면 인당이 시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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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사는 인당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인당장군은 밀직 이권(李權)과 함께 자연도(紫燕島)와 삼목도(三木島)에 침입한 왜구를 서강(西江)에서 막고 1354년에는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이해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정남만호(征南萬戶)로 원나라 군대와 함께 홍건적(紅巾賊)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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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려말에 공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고려말의 왕인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사랑이야기로도 잘 알려진 왕이었다. 그는 원나라에 협조하는 가운데 배원정책으로 국권을 회복하려고 했었다. 그는 인당장군에게 명을 내렸는데 1354년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강중경(姜仲卿)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략하였다. 이 때 강중경이 술에 취하여 말을 듣지 않으므로 그를 베고 단독으로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3참을 공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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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당이었지만 당진시의 끝자락에 위치해서 그런지 일부 시설은 관리가 필요해보였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원나라는 고려가 국경을 침입하였다 하여 고려의 사신 김구년을 요양성에 가두고 80만 병력을 동원하여 고려를 토벌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7월 참지정사(參知政事, 종 2품에 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공민왕에 의해 서북면 병마사였던 인당은 목이 베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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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고려사절요에는 유사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오래전에도 지금도 희생양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파악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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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장군 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아미산방문자센터가 있다. 내포문화 숲길이기도 한 이곳은 산은 나지막하고 산세도 부드러워 산행하기가 좋은 곳으로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아미산의 1봉에서 3봉 사이의 등산로에는 등산객들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정자와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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