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Sep 04. 2021

희생양

고려무장인당장군사당이 있는 당진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무장 하면 최영 장군이 대표적이지만 동시대에 최영 장군 같은 활약을 보여준 무장인 인당장군도 있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말 인당장군이나 최영장군 모두 비극적으로 희생된 것에는 공통점은 있다. 인당장군은 교동 인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마을의 이름이 교동리다. 살아오면서 인 씨를 본 적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멀리 인당장군 사당이라는 충정사의 이정표를 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중국 진(晉)나라의 인서(印瑞)가 신라 유례왕(儒禮王) 때 들어와 아찬(阿飡)의 벼슬을 하고, 그의 후손 인빈(印邠)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문하시사(門下侍史)를 지내면서 교동부원군에 봉해져 교동인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나 교통인씨의 세보를 보면 인당이 시조로 되어 있다. 

충정사는 인당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다.  인당장군은 밀직 이권(李權)과 함께 자연도(紫燕島)와 삼목도(三木島)에 침입한 왜구를 서강(西江)에서 막고 1354년에는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으며, 이해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정남만호(征南萬戶)로 원나라 군대와 함께 홍건적(紅巾賊)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그는 고려말에 공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고려말의 왕인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사랑이야기로도 잘 알려진 왕이었다. 그는 원나라에 협조하는 가운데 배원정책으로 국권을 회복하려고 했었다. 그는 인당장군에게 명을 내렸는데 1354년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강중경(姜仲卿)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의 8참(站)을 공략하였다.  이 때 강중경이 술에 취하여 말을 듣지 않으므로 그를 베고 단독으로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3참을 공파하였다.

오래된 사당이었지만 당진시의 끝자락에 위치해서 그런지 일부 시설은 관리가 필요해보였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원나라는 고려가 국경을 침입하였다 하여 고려의 사신 김구년을 요양성에 가두고 80만 병력을 동원하여 고려를 토벌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7월 참지정사(參知政事, 종 2품에 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공민왕에 의해 서북면 병마사였던 인당은 목이 베어지게 된다. 

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고려사절요에는 유사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오래전에도 지금도 희생양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파악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인당장군 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인의 눈썹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아미산방문자센터가 있다. 내포문화 숲길이기도 한 이곳은 산은 나지막하고 산세도 부드러워 산행하기가 좋은 곳으로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아미산의 1봉에서 3봉 사이의 등산로에는 등산객들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정자와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굴바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