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
조용하게 귀를 기울여보았다. 자동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적막한 가운데 새소리라던가 곤충소리만 들려왔다. 조금 더 집중하여 귀를 열었다. 자신을 납치해온 그 사람이 왜 안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업자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들리지 않았던 물소리가 들려왔다. 문경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소리였다. 물의 낙차가 있는지 물소리 속에 한 번씩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다시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보았다. 이렇게 감각이 민감해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물소리가 나고 계속 속으로 1,2,3,4를 셌는데 다음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러 번을 반복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평균을 내보니 1,2,3,4,5,6,7 정도에 비슷한 소리가 반복되는 것 같았다.
북동쪽 아니 방향은 모르겠다. 700~8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물이 흘러내려오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말고는 뭐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몇 시간 전에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도 이곳으로 오지를 않았다. 산의 안쪽으로 집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도로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집의 뒤쪽에 있었다면 소리를 못 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짐칸에 흔적을 남겼는데 오빠가 발견하였으면 하는 작은 기대도 해보았다.
학교 다니며 수학여행처럼 간 곳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갇혀 있었다는 그런 벽체 험하고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관속에 살아있는 채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발버둥 칠수록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여러 번 소리도 내보고 모스부호도 보내봤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한 가지 안 것은 그냥 조금 멀리 있는 곳에 물이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목이 마르니 물 생각만 계속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다시 한번 자신을 가두고 있는 나무상자를 묶인 발로 차 보았지만 얼마나 튼튼한지 발목이 시큰하기만 했다. 아니 튼튼한 게 아니라 상당 부분 땅속에 묻혀 있어서 단단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와 허리를 지탱하고 밀어보았지만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비극적으로 아사해서 삶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삶의 쉼표다. 삶의 쉼표, 삶의 쉼표... 그녀는 잠시 잠이 들었다.
기석은 동생을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계속 국도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날은 좋았지만 비가 내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잘 살펴보면 타이어 자국을 볼 수 있었다. 그 다리에서 떨어진 자동차의 타이어 패턴은 조금은 독특했다. 물론 타이어 자국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도 문경에 산지 오래되었지만 산길과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 많은 길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도로에 새겨진 타이어 흔적에 너무 집중했던 것일까. 앞에서 오는 덤프트럭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까지 했다. 그의 마음대로 별명을 붙인 펜션 탐정이라는 아저씨는 경찰서에서 그의 가족관계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남자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그 사람의 이력을 보고 있었다. 어릴 때 엄마에게 버려졌는데 한 번 파양 된 이후 다시 입양되어서 성장했다. 남자는 파양 된 기간이 짧은 그 기록은 제외하고 입양된 부모와 엄마의 부동산 이력을 살펴보았다. 아빠가 누군지는 기록이 없었다. 후배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조사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태어난 환경이나 자란 곳이 문경과 거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경에 온 것은 분명히 그와 직계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부동산이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게다가 차량의 뒤 짐칸에서 발견된 것이 지영이 것이 분명하다는 기석의 말에 따르면 우연으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야. 그 누구라고? 선배?"
"예. 문경경찰서에서 같이 근무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라고."
"납치 사건이라고 도움을 요청해서요."
"확실한 증거 있어?"
"조그마한 부엉이 도자기 인형이 있는데 그게 그 여동생이 가지고 다니던 거라던데요."
"야! 그건 어디에서도 살 수 있는 거야. 그거 가지고 지금 난리 치는 거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지금 형사도 아니고 펜션 주인이라며. 정신 좀 차려."
반장에게 한 소리를 드고 나오는 병주는 입장이 난처했다. 별다른 증거 없이 차량이 다리 아래로 떨어졌고 그 운전자는 사망했다. 그리고 그 뒷좌석에서 발견된 부엉이 도자기 인형뿐이 없었다. 자신이 할 일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배의 요청을 외면하는 것도 반장의 압박도 무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