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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0. 2023

난고(蘭皐) 김삿갓

강원도 영월에 잠든 민중의 시인 김병연 

사람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색이 분명하면 다른 사람의 색에 쉽게 물들지 않는다. 남에게 물들기 쉬운 이유는 내가 본래 물들기 쉬운 색을 가졌다는 의미다.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누군가 말하는 것에 의해 쉽게 물들고 혹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가 영월에 묻혀 있는 것은 알지 못했다.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병연(炳淵)이다. 그의 선조는 19세기에 들어와 권력을 온통 휘어잡은 안동 김 씨와 한 집안이었다. 사실 조선이 망하게 하는데 안동김 씨와 풍양조 씨의 역할도 상당히 컸다. 

그가 태어났을 때 집안은 아주 넉넉한 집안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거의 금수저집안에 가까웠던 것이다. 벼슬을 돈 주고 사고팔았던 시대 그의 할아버지는 평안도 선천부사였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1811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가산 · 박천 · 선천을 차례로 함락시켰는데, 가산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칼을 맞아 죽었지만 할아버지 김익순은 농민군에 항복하고 직함을 받는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모든 것을 눈감고 위정자처럼 살았으면 되었을 삶을 포기한다. 농민군에 몸을 맡겼던 할아버지 김익순은 자신이 살고자 농민군의 참모 김창시를 잡았을 때 그 목을 1천 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려 했다가 모반대역죄로 참형을 당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가 바로 연상이 된다. 그들은 국가가 망할망정 한몫 챙길 수만 있다면 궤변을 늘어놓았다. 

안동김 씨의 위세 덕분인지 몰라도 당사자인 김익순만 참형을 당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집안 내력을 철저히 숨기고 살면서 남달리 영민한 작은아들 병연을 글방에 다니게 했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던 해야 김병연은 과거를 보았다. 그의 시제는 아래와 같았다. 


“가산군수 정시의 충절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닿는 것을 탄식한다.”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김삿갓은 마음껏 붓을 놀려 장원급제를 했지만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의 옛 일을 말해주게 된다. 그는 그때부터 방랑을 시작하며 방방곡을 돌아다니게 된다. 배운 게 있어서 해학을 토해냈고 시를 썼다. 그의 호는 바위틈에 자라난 난초라는 뜻의 난고를 사용했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향이나 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묘는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계 · 금강산 · 영월, 아래로는 여산 · 지리산 · 동복까지 끝없는 방랑의 길을 떠돌면서 끊임없이 시를 쏟아냈다. 그는 세상을 관통해서 보았다. 양반 입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들과 거짓스러운 스승이라는 사람들, 정에 굶주려서 거짓을 말하는 기생과 수탈만을 일삼으며 자신의 창고를 채웠던 벼슬아치등이 차고 넘쳤다. 

이곳에는 그의 시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런 그를 찾기 위해 둘째 아들이 전국을 돌았다. 세상은 본래 더러움과 깨끗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삶에 대한 믿음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그 믿음이다. 

그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걸어서 나가본다. 기성 권위에 도전하고 민중과 함께 숨 쉬며 돌아다녔던 그는 쉰일곱 살에 전라도 땅 동복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의 아들이 시신을 거두어 이곳 영월 땅 태백산 기슭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묘소는 그의 삶처럼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벼슬을 한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두루두루 잘살게 함에 있다. 그는 조정에 몸을 담지도 않았고 양반 노릇도 하지 않았다. 

가기 좋은 길이 오히려 나쁜 길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인생의 길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막막하다. 크고 잘 다듬어진 길에는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아서 안전하게 느껴지고 가도 괜찮을 것 같지만 사람이 많아 한번 휩쓸고 가면 같이 끌려들어 간다. 

비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과 다른 방향의 길을 걷게 되면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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