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라는 도시를 살펴보기 위한 시립박물관
대전이라는 도시는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인 선사시대의 유물도 발굴되었지만 본격적으로 개발이 되면서 대도시로 발전된 것은 근현대의 역사와 함께였다. 일제강점기에 대전은 철도와 같은 교통망이 놓이게 되면서 대한민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쉽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유물들은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소중한 역사를 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들이 모여 맥락을 만들어낼 때 도시의 본질을 보여주게 된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전신이었던 향토사료관 시절부터 대전의 대표 공립박물관으로 대전의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어나가기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립박물관은 지역문화 균형발전의 핵심 시설로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공립박물관의 부실 운영을 방지하고 내실화를 꾀하기 위해 전국 272개 공립박물관을 대상으로 평가인증을 실시하고 있다.
272개의 공립박물관중 140개의 우수 공립박물관을 선정하였는데 대전시립박물관도 포함이 되어 있다. 이곳에는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등이 열리는데 대전 시립박물관이 자리한 지 10주년을 맞아 열린 개관 10주년 기념 회고전 大博十年대박십년은 작년부터 열려서 올해 3월 26일까지 전시가 되었다. 전시가 끝나기 전에 찾아가서 전시전을 돌아볼 수가 있었다.
5월까지 만나볼 수 있는 전시전은 시립미술관의 '최고의 편지'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지정 기념 특별전과 시립박물관의 분관인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열리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특별전 '대전의 독립운동사'를 만나볼 수 있다.
대전시립박물관의 3층에 오면 바로 보물로 지정된 나신걸 한글편지 특별전을 볼 수 있다. 2023년 3월 9일 나신걸 한글편지는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편지는 2011년 안정나씨 모역 이장 당시 신창맹 씨 무덤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한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원래대로라면 썩어 없어질 편지가 무덤에 온전하게 남겨진 상태로 발견되었을뿐더러 한글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우수 공립박물관으로 지정된 대전 시립박물관은 다양한 한국문화 속에 대전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전을 개최하고 있다. 지역마다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문체부는 박물관별 맞춤형 컨설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전시립박물관이 상대동에 자리하게 된 것은 2012년 10월 16일 이 자리에 개관하여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간을 뒤로 더 되돌리면 대전시립박물관의 전신은 1991년 문을 연 대전직할시 향토사료관이다. 이후로 2007년 노은동 유적 발굴로 인해 선사시대 전문박물관인 대전 선사박물관이 개관되었고 2014년에는 대전의 구 충남도청사에 있는 대전근현대사 전시관이 두 번째 분관으로 속하게 된다.
참고로 문체부의 우수 공립박물관의 평가지표는 전시와 교육, 수집, 연구 등 박물관으로서의 기본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박물관의 조직·인력·시설·재정 등이 효과·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등 박물관 운영 전반에 대해 5개 범주*, 14개 지표, 18개 세부 지표로 구성하여 평가한다고 한다.
대전시립박물관을 돌아보았으니 구도심의 중심에 자리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발길을 해본다. 이곳에서는 일제에 항거했던 대전 출신의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대전 근대건축물을 살펴보는 의미도 있다.
역사를 돌려보면 아픈 역사이기도 하면서 풀기 어려운 난제 같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아직도 이 땅에는 남아 있다. 1895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본격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조약으로 우리나라는 주권을 잃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다.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습니다. 의병을 일으켜 침략자와 맞서 싸웠고, 담배를 끊어 모금한 돈으로 국채를 갚았으며, 학교를 설립하여 실력을 키워나가기도 할 때 대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을 서기도 했다.
이곳에는 안중근의사나 유관순열사가 했던 글이나 말도 볼 수 있지만 영화 속 대사도 볼 수 있다.
"우리 만주에선, 지붕에서 물이 새거나
벽이 부서져도 고치질 않았어.
곧 독립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텐데
뭐 하러 고치겠어.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 영화 '암살'중에서
대전의 애국계몽운동은 1904년에서 1910년간 일제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고자 개화 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실력양성운동이라고 한다. 서울 및 지방 도시의 자산가와 관료, 개혁적인 유학자와 국내외에서 신교육을 받은 신지식층이 주도하였다고 한다.
대전은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유학적 학풍의 영향으로 개화운동 계열인 애국계몽운도 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으나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을 위하여 사립학교를 설립하였음을 당시 간행된 신문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대전시립박물관이 주관한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특별전 '대전의 독립운동사'는 대전 시립박물관의 분관인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오는 5월 31일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 상대동에 자리한 대전시립박물관의 상설전시실에서는 대전의 역사와 문화도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