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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8. 2023

지나는 객(客)

원주시의 중심에 자리한 원주예술광장과 운곡 원천석

어느 시대든 정치가 문란해지면 결국 망하게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는 그 시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고려 말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학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일명 권문세가라는 불리던 사람들로 인해 기울어지는 국운을 돌릴 수가 없었다. 고려말의 학자이자 원주사람으로 고려의 쇠망을 애석하게 생각했던 운곡 원천석이라는 사람이 있다. 

원주시에는 단구공원이라고 명명된 곳으로 원주예술광장이 있다. 문화예술의 장으로서의 지역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지향하며 도시를 재생하는 푸른 광장, 다 함께 문화를 즐기는 웃음광장,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광장이 만들어져 있다. 

상당히 넓은 면적의 광장으로 대규모 행사를 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곳이기도 하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하노라


운곡시사(耘谷詩史)중에서 


걷다가 보니 단구공원의 안쪽에 운곡 원천석의 동상이 보인다. 일찍이 이방원(李芳遠: 太宗)을 왕자 시절에 가르친 적이 있어, 이방원이 왕으로 즉위하여 기용하려고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이 원천석의 집을 찾아갔으나 미리 소문을 듣고는 산속으로 피해버렸는데 원천석이 남긴 몇 편의 시문과 시조를 통해, 치악산에 은거하면서 끝내 출사 하지 않은 것이 고려에 대한 충의심을 알 수가 있다. 

조선이 세워졌을 때 당시 고려 왕 씨를 위하여 절개를 지킨 대표적인 사람들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운곡 원천석을 꼽는다고 한다. 그는 정치가 문란해진 고려도 섬기지 않았고 새로 왕조가 들어선 이 씨 왕조를 섬기지도 않았다. ㅇ

사람은 갔지만 글은 남아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대표적인 흔적으로 글이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우리나라 2현(賢)을 기리는 시문 중에 최영(崔瑩)을 기린 전총재육도도통사최영(前摠宰六道都統使崔瑩)에서는 만일 왕 씨 혈통의 참과 거짓이 문제 된다면 왜 일찍부터 분간하지 않았느냐고 힐문하면서 저 하늘의 감계(鑑戒)가 밝게 비추리라고 말하였다.

원천석이 남긴 시구들이 이곳에 새겨져 있다. 시간이 된다면 이곳에서 그의 시를 읽어보면서 돌아보기를 권해본다.  

서리 내린 숲 봉우리에 잎이 흩날리는데 

그늘진 골짜기에 햇빛이 희미하네

채찍 하나로 여윈 말 타고 산길을 가노라니

시상은 그윽하고 바람이 옷에 가득해라

운곡 원천석이 목은 이색의 부름을 받고 쓴 시

운곡 원천석은 원주에서 멀지 않은 횡성의 칠봉서원(七峯書院)에 제향 되었다.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산자락에 있는 원천석의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모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원주시는 원천석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창의사를 건립하고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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