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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31. 2023

소망(所望)에 대하여.

기대나 갈망을 넘어선 믿음과 신뢰를 담는 것

희망과 소망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둘 다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지만 소망은 가까이에 있는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이고 희망은 그 자체의 목적이며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태어난 이상 어쨌든 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삶에 의미가 무엇이 있을까.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고통을 겪을 것이며 누군가는 옆을 떠나가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들은 결국 놓게 될 것이다. 희망은 자신이 살아 있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희망은 조금 더 멀리 보고 가는 것이고 소망은 조금 더 가까이 보고 가는 것이다. 원하고 바라기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희망은 소망에 더해서 그 일을 해낼 가능성에 대한 의미까지 포함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주제에 대해 다루었다. 소망의 소(所)는 바라는 바다. 사찰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화장실의 다른 표현 해우소(解憂所)는 버리긴 버리지만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희망의 희(希)도 바란다는 의미는 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소망처럼 명확한 의미나 곳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자체로 바라며 다른 뜻으로는 드물다 혹은 멀다가 있다. 희망은 바로 코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가능성이 내포가 되어 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살기 위해 행복해져야 하며 그렇게 살다 보면 소망은 조금씩 이루어져 지고 희망하는 바대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문서를 작성할 때 그냥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보이지는 않지만 컴퓨터는 그곳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여 기록을 한다. 스페이스바를 하나씩 칠 때마다 1byte씩 늘어난다. 분명히 무언가 채워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삶에서 소망은 계속 보이는 것을 기록하며 나아가는 것이고 희망은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간에 나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소망은 끊임없이 원하며 어떤 것은 이루어지고 어떤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망보다는 희망이 더 커지게 된다. 어릴 때는 소망하는 것이 더 명확하다. 희망은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의 사회활동보다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된다면 예전에는 사소해 보였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 큰 것이 절박해질 수가 있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가족과 함께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가족과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도킨슨이 제시한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모든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노력하며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자신의 아기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나 아버지가 자식들을 부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두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설계된 결과라는 것이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로 본다.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30년의 시간으로 나누어보면 조부모, 부모, 자식세대로 나뉜다. 조부모가 90대라면 부모는 60대, 자식은 30대가 일반적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나간 날들은 스페이스바를 누르듯이 계속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무언가를 해온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빈 공간에 의미 없이 스페이스바를 친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다. 연령대에 맞춰서 소망하지 않은 삶을 살지도 않았다. 어떤 날에 나눈 누군가와의 대화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뱉어낼망정 빚어서 말하지는 않는다. 


말은 때론 명확하게 해야 할 때가 있지만 빚어서 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어떤 약속들은 지킨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입장이라는 한자의 의미는 '서있는 장소'라는 뜻으로 그 사람이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넘어가 보이는 곳에 서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바로 그 너머의 풍경이 안 보이는 곳에 있을 수 있다. 그런 차이가 바로 입장차다. 가족과의 관계나 친구 등과의 관계에서 입장차가 있다. 그래서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망하는 것이 그렇게 다를진대 어떻게 서로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늘을 소망하고 내일을 희망하는 것이 삶이 아닐까. 지금도 지구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소망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삶이다. 적어도 가까운 이에게는 말을 빚어서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기대나 갈망을 넘어선 믿음과 신뢰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은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 진심을 많이 나눈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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