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풀거리는 마음으로 걸어보는 공주 상하신리 마을
꽃비가 내리는 늦가을 오후에 돌담길이 보고 싶어졌다. 아파트나 집합주택에 살게 되면 담너머를 보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주변 풍경을 보는 것은 놀이터나 가까운 공원을 가지 않으면 쉽지 않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돌담길이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공주의 상하신리라는 마을은 이쁜 카페와 정감이 가는 길들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대도시의 복잡함이나 경사가 심한 오래된 집들이 모여있는 곳의 느낌과는 좀 다른 감성을 전달해 준다.
올바른 길이란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만들면서 가면 그만이다. 어떤 선지자나 현명한 사람이라도 길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심지가 곧지 않으면 그 길을 생각 없이 따라가기 십상이다.
감도 무르익어가는 이 시기에는 과일이 나오는 것도 11월이면 끝물이다. 나오는 과일은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비싼 가격의 하우스 딸기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 속에 가을꽃들이 보인다. 몰랑은 산마루를 일컫는 전라도식 방언으로 이곳을 걷다보면 계룡산의 몰랑이 간혹 보인다.
이곳에서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도 촬영되기도 했었다. 작은 외상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였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약간만 다치거나 몸이 이상한 것 같으면 호들갑이 떨게 되는 듯하다.
상하신리는 상신리와 하신리가 합쳐져서 부르는 말이지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형적인 공동체마을이며 돌탑마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억새밭도 좋지만 돌담길을 걸으면서 피어나 있는 꽃들을 보는 것도 좋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보면 옴니버스식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고 그런 것들이 모여서 자신삶이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어진다.
돌담길을 걷다가 문득 아래를 바라보니 별과 같은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보라색과 흰색, 중앙에는 노란수술이 벌들을 기다리고 있다.
곳곳에는 숨겨져 있는 카페가 있다. 카페로 들어가는 길의 양쪽으로는 형형색색의 꽃들도 보인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즐거워지는 것이 가을풍경이다. 이맘때 피어나는 황화코스모스는 금계국과 외관이 비슷하지만, 계절적으로 조금 늦게 개화하며, 잎 모양에도 차이가 있어 둘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마을의 아래쪽으로 걸어서 내려오니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도 보인다. 은행나무의 주변으로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은행나무 홀로 모든 풍경을 대신하고 있어서 마을이 가을이라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켜 준다.
상하신리에 자리한 계룡산 도예촌은 조선시대 계룡산 일대에서 생산된 철화분청사기의 명맥을 잇고 잃어버린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1990년대 초에 모여 만든 마을이다.
천일홍, 핑크뮬리, 맨드라미, 구절초, 해국, 국화, 쑥부쟁이등의 가을꽃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마을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느낌이다. 중부권에서는 잘 보지는 못하지만 춘추벚꽃이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춘추벚꽃은 가을에도 벚꽃을 피우는데 11월 중순까지 피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경제적인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혹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운이라는 것은 완전히 통제할 수가 없지만 긍정적인 관계를 많이 키워둘수록 기회의 가능성은 커진다. 그것이 올해 가을이 던지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