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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서 만난 틈새

물 섬이라고 불렸던 섬과 같은 영주 무섬마을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리는 지역의 풍경이 있다. 풍경은 그곳에 살아왔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로 그 안에는 말은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견디는 삶을 넘어서 누리는 삶을 추구하는 일상적인 태도는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세상의 어떤 풍경들은 여러 해 공을 들여 지켜보아야 비로소 친해지고 나의 길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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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젖줄이기도 한 낙동강은 본류뿐 아니라, 지류들이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두었다. 영주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내성천의 무섬마을은 하회마을, 양동마을과 더불어 영남의 4대 명당이라는 명성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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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일 페보(Il fait beau)는 아름다운 날씨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때에도 무섬마을은 프랑스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프랑스인들은 형용사인 보(beau)는 아름답다는 표현으로 일상에서 경탄을 느낀 대상을 향해 아낌없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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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무섬마을은 외나무다리로 만들어진 풍경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외지고 아름다운 곳에 처음 터를 잡고 산 이는 반남 박 씨 박수 선생으로 1666년 무섬마을에 입 향했는데 선생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았다고 한다. 마을의 주산인 뒷산은 연꽃 형상이고, 집들이 모여 있는 평지는 연잎 형상으로 연화부수형의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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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가는 이때에도 그 노을색만큼이나 마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사방의 산수가 아름답고 깨끗하다. 만남 박 씨와 선성 김 씨의 두 가문은 4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 수 있었다. 매년 20월이 되면 2023 영주 무섬외나무다리축제가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무섬마을만의 자연경관과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무섬마을 바라보며'를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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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도시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즘은 풍요로운 공동체라는 말이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역사를 품은 마을을 가보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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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운 풍경은 작은 미덕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인생은 궁극적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고 고민과 역경을 통과하여 형상하는 삶에 대한 태도가 물질적인 것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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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사랑이 삶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고 했던가. 무섬마을이 이토록 사색에 대한 풍성함을 주는 이유는 400여 년이라는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까.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찾아오게 되는데 삶에 불어온 겨울과 영원히 그 계절에 멈춰버릴 것 같은 길에서 홀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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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문 시간에 이곳에 서서보니 필자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이날 이 순간만큼은 무섬마을은 나의 길로 이어지며 나의 마을이 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으면 그냥 첨벙첨벙하면서 건너갈 수 있는 물깊이지만 왠지 한 번도 안 떨어지고 무섬마을의 다리를 건너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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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의 다리를 건너서 오면 무섬이 살아있다 With 스탬프 투어도 해볼 수가 있고 외나무다리 건너편 버드나무 숲에 힐링공간도 남아 있다. 제 강점기에 뜻있는 주민들에 의해 건립된 아도서숙은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할을 한 곳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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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와 해우당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口자형 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도 직접 살펴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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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영화가 생각이 난다. 오래된 박물관의 역사 캐릭터들이 살아서 숨 쉬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던 영화다. 무섬마을이 살아있다는 스토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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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은 거창하고 비싼 것에 있지가 않다. 생각해 보면 부드러운 바람, 문득 보이는 화사한 단풍, 아무 걱정 없는 웃음소리, 작고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작지만 빛나는 순간들이다.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설렘으로 찾아왔던 무섬마을의 기억처럼 다시 이곳을 찾을 때는 밤 사이 소복이 내린 눈으로 온통 새하얀 풍경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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