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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6. 2023

비와 가을

가을에 물들고 비에 젖어 시간이 흘러가는 신경섭고택

가을에 걷기 좋은 길을 알려주는 많은 글이나 사진들이 올라온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시간이 지나 나무가 단풍을 떨구기 시작하고 있다. 날씨에 따라서 다양하 분위기를 내고, 노을이 지는 날에는 독특한 색감을 가지고 장관을 연출한다. 높은 가을 하늘, 손에 잡힐듯하게 낮게 떠가는 구름과 어우러지는 고택은 가을의 낭만적이 풍경 중에 하나다. 

노란색의 은행의 단풍잎이 물든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아래에는 노란 단풍잎을 모두 떨구고 비와 가을의 분위기만큼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로,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노란 은행나무 단풍으로 물드는 청라 은행마을의 장현초등학교 일원에서 이곳 신경섭고택까지가 은행나무길이다. 

비와 가을의 어울리게 촉촉하게 젖고 있는 모습 속에 흘러가는 천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청라마을에는 이곳 어딘가에 있는 연못에 누런 구렁이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구렁이는 천년 동안 용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끝에 여의주를 물고 황룡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청라마을에 떨어져 있는 노란색 은행을 여의주라고 생각해서 마을로 물고 와 이곳에 수많은 은행나무가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매년 10월이면 청라은행 마을 축제를 여는 곳이다. 

하늘이 은행색이 아니라 땅이 은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을의 절정, 황금빛 이곳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지 않았을까. 조선 후기에 지어진 신경섭 고택은 은행마을의 백미. 고택 주변을 은행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천천히 마을 산책을 즐기면 곳곳에서 멋진 포토존을 만날 수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입동이 지나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을 코앞에 두고 있다.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지만 확실히 날이 많이 쌀쌀해지고 있다. 

비가 온다는 정보는 접했지만 비가 오는 날 사람이 없을 때 홀로 신경섭 고택을 거닐어보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 방문해 보았다. 신경섭 고택은 조선 후기(朝鮮後期) 한식 가옥(韓式家屋)으로 당시 부호(富戶)의 사랑채로 건축되었으며 대문채는 우진각 지붕으로, 신석붕의 효자문(孝子門)을 세워두었다.

어머니의 정이 있다는 문으로 들어가 본다. 작은 문이지만 어머니의 정만큼이나 따뜻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오래된 화석처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는 중생대에 이르러서는 약 11종 정도로 번성하였지만 백악기(6천5백만~1억 3천5백만 년 전)에는 지금의 모양과 거의 같은 은행나무가 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다. 

보령 청라은행마을 축제가 열릴 때면 은행알 찾아먹기, 은행마을 둘레길 투어, 은행열차 체험, 까마귀 가면 만들기 등의 체험행사도 해볼 수가 있다. 

은행의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터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가 있고 열매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긴코릭산(Ginkgolic acid)이 들어가 있어 어느 동물도 손쉽게 손대지 못한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은행잎이 보이지 않았던 둘레길에는 은행잎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리 추워져도 이 은행잎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듯하다. 

걷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떨어져 가는 단풍잎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 잎새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다림일까. 올해의 마침표일까. 단풍의 톱니 같은 가장자리가 시들고 약해져 갈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잎자루 부분에는 아직 진한 초록빛이 남아 있는 마지막 잎새처럼 비와 가을의 분위기를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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