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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7. 2023

대전 토막살해

1,999년 대전에서 일어난 영웅파의 엽기적인 살인

필자도 알만한 대전 서구 탄방동의 한 편의점에서 여러 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모임에는 여성이 한 명이 섞여 있었는데 그녀에게 곽종길(29)은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욕설도 하면서 성희롱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는 강정숙(25)으로 이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이순철(32)의 여자친구이며 동거녀였던 것이다. 술을 마시는 남자들 중 손에 닿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여성의 가슴을 아무렇지 만지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곽종길은 술만 마시면 주사가 심한 것을 넘어서 피아식별을 못할 정도로 욕설과 온갖 짓거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곽종길에서 짜증이 나있던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버릇없다면서 같이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곽종길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서로 간의 감정이 격화되었다. 결국 일행은 곽종길은 집단 린치하기 시작했다. 180cm가 넘는 키에 100kg에 육박한 곽종길은 여러 명에게 맞아서 기절을 하게 된다. 이를 본 편의점 주인이 경찰에게 전화를 했지만 일행은 잽싸게 곽종길을 승용차에 태우고 자신들의 합숙소로 데려가게 된다. 


이들 일행은 나름 조직이라고 해서 신흥조직으로 스스로 칭했던 영웅파였다. 집에서 깨어난 곽종길은 니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면서 악다구니를 쓰고 범행을 다 밝히겠다는 등의 말을 하자 다시 집단 린치를 가하기 시작하고 결국 같은 날 오전 6시경 야구방망이와 회칼, 쇠망치 등으로 폭행하다 복부를 칼로 찔러 곽종길을 무참히 살해하게 된다. 이들 조직의 두목은 당시 32살 나이의 이순철이었다. 영웅파는 이순철을 비롯하여 박재범, 장종빈, 정덕수, 원 모 씨, 유 모 씨와 살해당한 곽종범 등이었다. 


이들이 거주하던 집은 대전 서구 도마동의 한 단독주택이었다. 1999년 8월 조직을 결성하고 청부폭력, 사설 경호, 보험 사기등으로 돈을 마련해서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단독주택의 마당 바닥에는 1999. 9.26이라는 날짜와 조직원들의 이름 끝자리인 범. 철. 빈. 수. 식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99년 10월 22일에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순철의 동거녀인 강정숙은 단란주점 종업원이었다. 


이들은 곽종길을 살해하고 이순철의 지시에 의해 시신 훼손을 시작한다. 욕실에서 뼈와 살을 분리해 낸 후 토막을 내고 이빨을 모두 부순다음 지문을 없다고 지금 대전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유성구 성북동 산림욕장 부근에 20미터 간격으로 3개 구덩이를 파서 시체를 암매장하였다. 서로 결속을 다지며 발설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체에서 간을 빼내서 7 등분한 다음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살해사건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한 사람이 심리적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검찰에 자수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순철은 사형, 박재범은 무기징역, 장종빈에게 25년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이 모든 일을 주도했던 이순철은 가정환경에 의해 그대로 범죄자로 자라난 경우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베트남전에 갔다 온 사람을 가까이서 오랜 시간 봤기 때문에 전쟁과 살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PTSD로 사회성을 잃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을 이루었더라도 폭력을 일삼으며 말 그대로 사회 부적응자의 삶을 살게 된다. 이순철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특무상사에까지 올라 제대를 한 사람이다. 


군대에서 나온 아버지는 평생을 놀고먹으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했으며 도박과 여자에 탐닉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한 여자에게서 이순철을 낳은 것이다. 그리고도 계속 폭력을 일삼고 인간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이순철은 범행에 대한 학습효과를 통해 15살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1989년 소년원 동기 등 7명과 전남 광양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었으며 이순철이 소지하고 있던 칼로 상대방을 찔러서 죽게 만든다. 살인죄로 12년형을 받았지만 10년 8개월 만에 가석방되어 1999년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런 환경에 있더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태어난 것에는 죄가 없다. 그렇지만 이 사회는 그런 것에 대한 것을 감안하지 않는다. 지금도 부모의 자격이 전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범죄의 씨앗은 언제든지 범죄 꿈나무(?)로 자라서 이 사회에 위협이 될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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