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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5. 2023

산골 소녀 영자

미디어와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부녀의 비극

한국 사람들은 특이하게 자신의 경험과 눈으로 세상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을 물들인 것은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찾아간 관광객들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한국 사람들이 그곳에서 돈을 쓰면서 우월감을 느끼려고 한다. 소득이 적다고 해서 불행하거나 불쌍한 것은 아니다. 모든 습관 중에서 나쁜 것이 가장 습득하기도 쉽고 심지어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측면을 흡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얻는 이유는 적은 것으로도 살아가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엿보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1982년생인 이영자라는 소녀는 강원도 횡성의 오지에서 세상이 궁금했지만 부족한 것이 없이 아빠와 함께 살았다. 정규교육과정인 초등학교도 1주일 정도만 다녔을 뿐 모든 것을 아빠를 통해 들었으며 대화도 아빠와 했었다. 그녀에게 문명을 알려주는 것은 라디오 하나뿐이었다. 그렇게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아가던 그들을 발견한 사진작가가 있었다. 1999년 산골의 오지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던 작가는 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세상에 알렸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0년 7월 KBS 2TV 인간극장 '산속에 영자가 산다'라는 제목으로 5부작에 걸쳐 방영되었다. 그 후로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기까지 누리게 된다. 이들이 불쌍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편지와 각종 후원품이 이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대도시의 문명사회에 살던 사람들에게 이들은 없이 살면서 불쌍하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그들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 것이다. 분명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인정해야 한다. 


이영자라는 소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후원자들이 있었으며 부녀의 인기가 높았지만 당시 LG텔레콤의 광고도 찍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영자를 계속 부추기던 후원자가 있었다. 후원을 비롯하여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그 세상이 궁금했던 영자는 아빠 몰래 도시로 상경하여 그 후원자의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된다. 그 후원자는 예상하다시피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영자를 등에 업고 각종 후원금을 횡령하고 그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순수한 사람이 얼마나 있나 궁금할 때가 많다. 


그렇게 불행해져 가던 영자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CF 등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1년 2월 12일 그녀의 아버지가 횡성의 산골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형이 동생의 집에 방문했다가 시신이 된 영자의 아빠를 발견한 것이었다. 발견 당시 문이 부서져 있었고 방안에 피가 흩뿌려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경찰은 그냥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검찰 역시 단순 병사사건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산골집에 내려와 아빠의 시신을 수습하던 영자는 시신 왼쪽 쇄골에 깊은 상처를 발견한다.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여론으로 인해 경찰은 국과수로 시신을 보내 부검을 하였고 죽음의 원인이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재수사를 한 끝에 약 한 달쯤 지난 3월 13일 53세였던 양재동이 구속이 되었다. 양재동은 절도, 강도등의 강력범죄로 전과 7범에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29년이었다. 출소하기 직전에 TV에서 방영되던 영자이야기를 본 것이었다. 부녀가 돈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양재동은 출소 후에 몇 번의 답사를 통해 영자의 아빠가 홀로 산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001년 2월 9일 영자의 아버지가 거주하던 집의 방문을 부수고 돈을 요구하다가 흉기로 찔러 살해하였다. 이때 훔친 돈은 수표를 포함하여 12만 4천 원이었다고 한다. 


산속에서 무슨 돈이 필요했을까. 현금을 집에다가 보관할 이유가 없었던 영자의 아버지에게 현금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영자의 아빠를 죽이고 도망친 양재동은 훔친 돈을 가지고 달아나서 노래방에서 잘 놀고 훔친수표를 썼다. 사람들은 뉴스에서 혹은 언론에서 누군가가 돈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그냥 믿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언론은 자극적인 것으로 낚시질을 하면 되기 때문에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우매한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믿기도 하고 심지어 주변사람에게 퍼트리기까지 한다. 


2월 27일 이영자의 후원회장을 자처했던 남자는 영자의 출연료와 인세 등을 횡령하면서 구속이 되었다. 이와 함께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당해왔는데도 불구하고 후원회장의 아내는 언론에서 자신의 남편은 잘했는데  왜 구속했느냐며 외치기도 했다. 돈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을 한다. 자신이 한 역할보다 훨씬 크게 착각하면서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아빠를 잃고 후원회장의 사건을 겪었던 영자는 세상이 무섭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과 단절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산골 소녀 영자는 김천의 직지사(https://brunch.co.kr/@hitchwill/5720)에서 행자교육을 받고 산사로 들어가서 비구니가 되었다. 각종 언론사에서 영자가 사라지고 나서 마치 악귀처럼 찾아다녔는데 절에 들어갔음을 확인했지만 영자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영자는 그냥 돈이었다. 황금만능주의는 그치지가 않았다. 영자와 전혀 상관없는 신풍출판사는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라는 추모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홍스구락부 제작자였던 조문홍은 자신이 제작한 '산골소녀 영자' CF 패러디를 제작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그녀는 사찰에 들어간 이후에도 주지스님 한 명을 빼놓고 모든 스님과의 소통을 단절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보다 더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만족을 하고 유명해졌다고 하면 그냥 우러러본다. 수많은 예능 서바이벌을 통해 유명해진 가수들 그리고 연예조차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소비가 된다. 사실 이 모든 폐단은 그 방송을 보는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교에서 그녀가 받은 법명은 도혜(道慧)다. 해석해보면 슬기로운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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