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스타에게 기대하는 건
협녀 개봉으로 인해 이병헌이 다시 대중들의 심판대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재기의 칼을 뽑았는데 미지근하 나는 둥의 기사를 뽑아내고 있는데 적어도 이병헌은 협녀로 해서 잃은 것이 없다. 오히려 전도연과 김고은이 그 역할을 다해내지 못해 생각만큼 주목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별볼일 없는 각본의 영화를 이나마 살려낸 건 바로 이병헌이다. 먼저 말하자면 이 글은 이병헌을 옹호하고자 쓰는 글은 아니다.
지금 이병헌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난해 모델 이지연과 걸그룹 글램의 멤버 다희와 동영상 협박 사건에 휘말리면서부터이다. 일부 언론은 배우로서의 가치가 추락했다고 하는데 배우로서의 상품성은 추락했을지 몰라도 가치는 추락하지 않았다. 엄연히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를 보면 가치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린 그렇게 도덕적인가?
일부 언론에서는 임신한 마누라를 놔두고 부적절한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젊은 여성들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라고 말한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여기서 임신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임신이다. 한국에서 한 여자가 임신하는 것은 사회에서나 가정에서의 역할을 다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다른 어떤 국가와 비교해도 우리는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에 이렇게 열광하는지 처음 알게 된다. 사실 우린 생각만큼 도덕적이지 않다. 그리고 도덕적 잣대도 제각기 다르다. 충분히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린 채 남녀사이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적극적이다. 이민정에 빙의해서 이병헌이 남편인양 생각한다. 정작 그 고민을 해야 할 이민정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데 먼저 나서서 더한 반응을 보인다.
약자 코스프레
대중들이 불의에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뜰 때가 있다.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명확하게 언론에 드러 날 때이다. 언론이 사실을 임의대로 살짝 뒤틀어서 해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갑자기 약자에 빙의하기 시작한다. 50억을 달라는 협박 같은 불법은 뒤로 한 채 모델 이지연과 걸그룹 다램의 입장으로 빙의하는 것이다. 불행하게 우리 사회는 승자 독식 사회이다. 배우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대부분의 산업이 그러하다. 연예계에 입문한 여자들은 남자에게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육체다. 자신의 갈길은 오로지 연기나 가수로서의 데뷔의 외통수길이라면 오랫동안의 험난한 길을 감내하던지 지름길로 갈 수는 있지만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 있다. 이때 지름길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길 대신에 그냥 평범한 인생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잊히기 힘든 이유
이슈로 뜬 연예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슈라는 심지가 다 타 버리면 그들은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더 이상 방송사나 기획사가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들은 더 강한 이슈를 만들기 시작하고 결국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병헌을 보면 이슈들이 자신이 원해서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사생활이 깨끗하지 않아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의도하지 않은 노출이다.
목소리, 외모, 로맨스 연기, 카리스마 연기, 액션 연기, 코믹 연기 등을 하나씩 떼놓고 보면 이걸 대체할 배우들은 한국에 있다. 그러나 이걸 모아놓으면 대체할만한 배우가 많지 않다. 영화 한편에서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배우가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이 데모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임금도 있지만 자리보전 때문이다. 자리보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대체 불가한 사람이 되면 된다.
그럼 이병헌이 지금까지 행동했던 것이 바람직할까?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만큼 유명세를 누리는 자리에 있고 그의 말 한마디나 행동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숙고하고 숙고하여 행동했어야 함이 맞다. 그러나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과 불법적인 행동과는 차이가 있다.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활에 국한되는 것이라면 불법적인 것은 이 국가가 지탱해 나아가야 할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이병헌의 연기는 아직 대체 불가능한 그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