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지도 않을 사기행운을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의미는 좋은 가치를 가진 것들이 사라지고 난 빈자리에 더 빈약하고 가치 없는 것들이 채워진다는 의미다. 한국의 언론은 이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듯이 보인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가지고 클릭장사를 하고 한탕주의를 지속적으로 권하는 언론사들과 돈만을 위해 달려가는 유튜버들과 다를 것이 없어져버렸다. 이미 건설사를 대변하는 언론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부동산을 정확한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언론사들이 나서서 희박한 확률로 당첨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는 느낌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 중에 하나가 로또분양이다. 분양을 받기는 받는데 아주 적은 확률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로또라는 단어를 앞에다가 붙인 것이다. 사실 많은 것들에 로또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통 확정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기반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준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내년에 연봉이 올라가는 데 있어서 친구에게 술을 한 잔 사줄 수는 있어도 연봉의 몇 프로를 준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로또의 경우 아주 쉽게 말한다. 로또만 되면 1억을 준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흔하다. 만약 된다면 기꺼이 줄 수 있을 정도의 매우 희박한 확률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자신의 상황을 단 번에 바꾸어줄 것이라고 희망에 기인한다. 그냥 그 정도에서만 머무르면 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걸 넘어서 과도하게 집착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사기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가장 흔한 예로 가입비에 차등을 주어 맞출 수 있는 로또번호를 알려주겠다는 사기다. 가입비에 등급을 두어서 더 고액을 받을 수 있는 번호에는 많은 가입비를 받는 식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행운이 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다.
탕진한 돈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쓴 돈의 양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체 로또에 확실하게 당첨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왜 가입비를 받고 알려주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너그러운(?)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은 생명의 위협이나 특정한 상황에서 공동체의 선함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돈을 벌게 해주고 싶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보는 것이 사기에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물론 누군가의 돈을 벌게 해 줌으로써 계약상으로 수수료를 받아 이득을 내야 하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지만 말이다. 이런 케이스도 수익이 아무런 인과관계없이 수중에 들어온 다음에야 논할 수가 있다.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삶이 고달파진다. 행운이라는 단어는 다행스러운 움직임을 의미한다. 다행스러운 움직임이란 없었던 것들이나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들어오는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날그날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이다. 물론 한국사회는 자꾸 더 많은 것을 원하라고 강요하듯이 밀어붙이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애초부터 결정이 된 것들이 있다.
제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을 가지는 것보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한 것이 결국에는 현명한 투자가 된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투자든 돈이나 어떤 가치가 있는 것들에 대한 투자이 든 간에 자신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제어가 가능한 상황에 놓인 것이나 적어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넘어선 누군가의 성공소식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자신도 모르는 실체를 향해 실체를 알고 벌어온 돈을 넣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