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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9. 2024

가을 대봉감

공기와 물이 맑은 곳에도 가을이 무르익어갑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다 보면 오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혹은 호젓하게 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시냇물 소리와 향기로운 가을꽃내음을 맡는 것은 자연이 주는 기쁨이기도 하다. 그런 기쁨이 하동군의 악양면이라는 곳에 있었다,. 아직도 포근한 10월 산뜻한 가을의 아침 이슬, 잘 익은 과일나무에 흐르는 윤기와 그것은 누구에게나 빛나는 나날들로 기억이 된다. 

경상남도 하동에는 신라시대에 소다 사현(小多沙縣)이었으며 악양의 ‘악(岳)’은 ‘작다’라는 뜻이므로 소다사(小多沙)의 ‘소(小)’에 해당하고, 볕을 뜻하는 양(陽)은 ‘따사롭다’에서 접미사 ‘롭다’를 뺀 ‘다사’가 되므로 악양은 곧 ‘소다사’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하동에는 대봉감이 무르익어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대봉감이 묵직하게 익어서 곧 곶감으로 바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악양면은 북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뻗어 나온 거사봉을 등지고, 동쪽 지맥인 칠성봉·구재봉과 서쪽 지맥이 악양면을 좌우로 에워싸며, 가운데에 토질이 비옥한 분지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래서 대봉감이 다른 지역보다 맛이 좋다.  

고려시대 이곳으로 내려온 한유한은 고려 인종 때 벼슬살이를 하다가 이자겸(李資謙)의 횡포가 심하여 장차 변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가족들과 함께 악양에서 숨어 살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자겸이라는 사람에 대한 모습은 드라마에서 여러 번 그려진 바 있다.  

저 아래에 자리한 마을들은 모두 악양의 마을들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헤르만 해세의 말처럼 그렇게 매년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아간다. 

악양면은 여러 번 아니 열 번은 넘게 방문해 본 곳이어서 그런지 때론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다. 우리가 외롭고 고독한 순간도,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도, 헤매며 방황하는 순간일지라도 하동 악양면은 모든 것을 품어줄 것만 같다.  

가을은 모든 것이 익어가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살면서 견뎌 낼 만한 고통은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하는데 2024년도 열심히 살면서 꾸준한 속도로 달려왔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흔들리는 삶도 빛나는 별처럼 움직이는 삶으로 여기면 늘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동 악양면은 분지형이지만 생각보다 넓은 곳이다. 이곳에는 어찌나 대봉감이 많이 심어져 있는지 어디를 가도 익어가는 대봉감을 볼 수가 있다. 

악양면을 가로질러서 흘러가는 천변에서 조용히 해가 저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가는 것조차 잊어본다. 하동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에서 흘러내려가는 물은 섬진강에 다다르면 함께 흘러서 남해로 흘러들어 간다. 이따금 몸을 기울여 물을 들여다보면 흘러가는 물에 햇빛이 비쳐서 윤슬을 만들어낸다. 마치 세상의 후광을 비추어주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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