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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물든 고택

고운 마음처럼 물들어 있는 봉화군의 만산고택

차 있다는 의미의 만(滿)과 늦을 만(晩)은 같은 만인데 의미는 다르다. 차 있으면 좋겠지만 가득 찬 만은 번민하고 교만하다는 뜻이 있다. 늦을 만은 말 그대로 저물고 늦었다는 의미다. 아직도 담을 것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좋다. 올해 가을은 좀 늦었다. 늦었지만 채워져 있어서 그런지 가을여행하기에도 좋은 11월이다. 차 있는 만이 아니라 늦을 만자를 사용하는 고택이 봉화군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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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걸음으로 돌아보기 좋은 마을이 봉화군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걷는 시간이 한없이 여유롭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기와집들은 마치 없었던 고향 집에 간 것처럼 푸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구불거리며 만들어진 흙돌담길로 걷다 보면 위에 남아 있는 감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보다 보면 어느새 문 앞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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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을 만을 사용하는 '봉화 만산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냈으며, 만년에 도산서원장을 역임한 만산 강용(晩山 姜鎔, 1846~1934) 선생이 1878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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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이 방문한 이곳의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낙동강의 첫 번째 지류라는 운곡천을 배산임수 삼아서 들어선 만산고택은 사대부 집안의 가옥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한제국의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만산은 임금님이 계시는 근정전에 올라가서 정사를 논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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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후에서 그런지 더욱더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는 고택의 내부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마당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가을꽃을 정성 들여 키우기란 쉽지가 않다. 누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고택 내에는 방문객을 배려한 듯이 가을꽃을 심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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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건너편에 ‘ㅁ’ 자형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있고 왼편엔 공부방인 2칸짜리 소박한 서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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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 현판 왼쪽으로 ‘靖窩(정와)’ ‘存養齋(존양재)’ ‘此君軒(차군헌)’이 나란히 있는데 정와는 ‘조용하고 온화한 집’이라는 뜻이며 ‘존양’은 ‘본심을 잃지 않도록 착한 마음을 기른다’란 의미, ‘차군헌’은 조선 후기 서예가인 권동수의 글로 ‘차군’은 대나무를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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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이나 툇마루에 앉아서 마당에 있는 가을을 쳐다보고 있으면 세상의 잡다한 일들은 별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 이상향이라는 것은 없다. 그냥 밀고 당기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와서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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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 칠류헌(七柳軒)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 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영친왕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덕혜옹주의 이복오빠이다. 서울의 종묘에 배향된 마지막 조선-대한제국의 황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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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어서 조금은 불편한 여행길이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더 새로운 감성이 물들어가는 듯하다.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관광공사가 '11월에 가볼 만한 5곳'을 꼽았는데 ‘낙엽 밟으며 걷는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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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가을에 물들어 있는 봉화군 만산고택은 조용하고 온화한 집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만산고택의 '만산(晩山)'을 판각한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써서 하사한 것이며, 서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 편액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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