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군에 자리한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본 워낭소리 촬영지
지금까지 시골에 있었던 고유한 모습들이 다큐멘터리나 인디영화로 나온 다음에 평온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나이가 드신 분을 조명한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로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다. 이제는 농기계가 아닌 소를 사용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지만 첩첩산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아직도 소를 중요한 노동력으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워낭소리라고 해서 언론등에서 나오고 TV등에서도 상영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소가 한 번 태어나고 나서 지금처럼 고기나 우유를 획득하기 위한 대상이 아닌 노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목에 방울을 걸었다.
워낭소리가 인기를 끌고 나서 이곳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끄러워지면 평온한 삶이 무너지게 된다. 당시에 할아버지의 삶도 평온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40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온 소와 인간은 마지막으로 보낸 1년의 시간을 영상에 담았다.
안쪽에는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 사라진 공간들만 남아 있다. 반려동물인 개보다 소나 닭이 훨씬 오래 산다. 이곳에서 살았던 누렁이는 1967년에서 2007년까지 살았다.
그렇게 동고동락했던 소를 2007년에 먼저 보낸 할아버지는 2013년에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6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2019년에는 할아버지 부부가 살던 집이 불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터에 공원을 조성을 해두었다고 한다.
잠시 옛 집터에 만들어진 원두막에 앉아서 봉화군에서 들려왔을 워낭소리를 생각해 본다. 삶의 모든 것은 때론 기적이 되어주기도 한다. 매년 봄에 논에 물이 돌게 만들고 모를 심고 그리고 1년 동안 동고동락했었다.
워낭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워낭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있고 영화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는 농경을 돕는 귀한 동물이어서 함부로 죽이거나 고기를 먹기 위해 잡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별로 특징이 있는 여러 품종이 전래될 수 있었다.
워낭소리를 들으면서 지냈을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가 벽에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지가 1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최고의 발명품은 수레바퀴였었다. 할아버지와 소를 이어주는 교통수단도 바퀴가 달린 달구지였다. 산스크리트어로 차크라는 바퀴를 의미한다. 역경은 밤과 낮, 선과 악, 행운과 불운 등등의 서로 다른 양극들의 보편적 존재를 상징한다.
삶에서 역경을 이겨냈던 사람과 소의 이야기가 워낭소리로 인해 사람들에게 소리로 전달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그 현장으로 돌아와 보니 시간의 덧없음이 이 공간에 있는 것만 같다. 아늑하고 고요했던 봉화군의 농촌길의 고즈넉한 풍경에 정신이 팔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평온하게 머물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