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힘에는 문해력이 있다.
약육강식의 시대가 아닌 이상 법이 기준이 되고 문명시대에서 가장 큰 힘은 생각하는데에서 나온다. 결국 모든 것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뇌의 관점으로 본다면 사람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귀에다가 그 소리를 들려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동영상 등으로 혹은 소리로 듣는 것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자신만의 해석방식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동영상을 보면서 사람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더라도 불편하지 않다. 그냥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해할 생각조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글을 읽고 해석하는 힘을 문해력이라고 한다.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고 듣게 되며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본다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모든 것을 깨닫고 공간을 볼 때 0과 1로 반복되는 세상의 변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어려운 것들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표현, 세상의 변화가 보인다는 의미다.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사기도 좀처럼 당하지 않는다. 책은 글자를 읽고 뜻을 해석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보를 얻기 때문에 정보 습득이 능동적이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가지게 만들어준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문해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문해력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글을 쓰고 꾸준하게 하다 보면 문해력이 높아지게 되고 사람들이 아무리 거짓을 포장해서 말해도 그 속에서 거짓이 걸러지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미디어 속성상 영상은 정보 전달이 직관적이고 현장감이 높아 우리의 인지 활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기본적인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을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문해력이다. 사람의 말을 곡해해서 듣고 잘못된 정보를 올바른 정보로 받아들이고 때론 상황자체를 곡해하여 엉뚱한 해석과 결과에 이르게 쉽게 된다.
똑같은 단어와 문장을 말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부여가 된다.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이나 왜곡하려는 여러 가지 의도가 들어가 있지만 문해력이 없다면 어떤 작은 변화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사람말에 휩쓸려서 허위정보에 쉽게 노출이 된다. 문해력은 단순히 독해나 책을 읽음으로 인해 어휘력이 좋아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특히나 문해력이 가진 힘에 대해 간과를 하고 있다.
AI는 비교적 명확한 정보나 표현에 대해 처리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지만 문해력은 습득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분야다. 동영상 등으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이제 대부분 AI가 대체할 수가 있다. 너무나 쉬운 분야이며 그 뜻의 해석이 복잡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하나의 기계처럼 일하고 싶다면 문해력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스마트폰이 더 고도화되고 기계가 진화하고 있는 이때에 더 중요한 능력은 문해력이다. 영혼이 없는 다른 존재와 차별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명확하게 차별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21세기에는 문해력이 바로 그리스어로 발견을 뜻하는 유레카를 외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