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살아내는 것이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세요."라는 문구만 보았을 때 이 책은 오래된 노부부의 사랑이야기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82살의 할머니가 3,200km나 덜어진 대서양으로 바다를 보기 위해 홀로 걸어서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떠나는 여행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떠나는 여행인지 궁금증이 앞섰다.
이 소설은 그냥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때의 고통과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내용을 덤덤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때를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지만 그래도 죽음보다는 삶을 더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에타와 평생을 같이 한 오토와 그녀를 옆에서 다독여준 러셀과 여정을 같이 해준 코요테 제임스의 자기방식 인생 여행기이다.
"추신. 당신이 바다를 보러 떠났다는 건 알고 있고, 나도 당신이 바다를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혹시 다른 이유로 떠났다면, 혹시 내게 직접 말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알게 됐거나 혹은 그걸 잊어버려서 떠난 거라면, 그런 경우라면, 언제든 편지에 적어주시오.; 여기에 풀어놓고 종이와 잉크 (혹은 연필) 밖의 세상에서는 절대 언급하지 맙시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같이 갈 때도 있지만 혼자 갈 때도 있다. 사랑에 돈이 결부될 때 가장 공허함이 남게 된다. 전쟁의 상흔을 가지게 된 오토와 에타와의 아름다운 여정이 이어진 데에는 서로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로서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만큼 거짓되고 헛된 것은 없다.
"오 외로운 초원에 날 묻지 말아주오
코요테가 울부짖고 바람이 자유로이 불어대는 초원에는
세로 15센티미터, 가로 8센티미터짜리 좁은 관에 묻어주어-
오 외로운 초원에 날 묻디 말아주오."
수많은 실패 가능성을 딛고 태어난 생명은 아름다운 인생을 부여받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무게가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친한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명씩 떠나가는 것을 볼 때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에타는 새로운 인연보다 떠나가는 사람이 많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다. 보통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젊은 사람들과 똑같다. 육체적으로 나이가 들었을 뿐 아직 인생의 불씨는 남아 있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꾼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아주 오래도록 남게 된다. 개개인의 인성파괴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의 인생의 치열함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 에타는 전장에서 돌아온 소년들을 만난다. 팔이나 다리, 뇌 혹은 영혼이 사라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해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떠나요. 계속 군에 입대해서 떠나죠. 모든 소년과 모든 남자 가요. 댄스파티에 가면 여자들과 부상당해 돌아온 남자들, 그리고 러셀 뿐이에요."
에타와 오토의 편지는 마치 삶의 약한 부분을 이어주는 질긴 끈처럼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과거의 에타와 오토, 현재의 에타와 오토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인생의 끈을 부여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다른 방식으로 또한 나아간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에타는 걷고 또 걸었다. 제임스도 걸었다. 가금은 앞서 달려 나가기도 하고, 가끔은 뒤에서 킁킁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그녀의 곁에서, 바위와 호수와 나무. 바위와 호수와 나무."
"그리고 오토는 밤을 새워 만들고 또 만들었다. 올빼미, 제비, 일각돌고래, 땅다람쥐, 너구리 두 마리, 여우, 거위, 다람쥐, 방울뱀, 며칠 밤이 걸린 들소, 스라소니, 닭, 코요테, 늑대, 제일 작고 섬세한 메뚜기 무리."
"그리고 러셀은 북쪽 어딘가에 있었고,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모두 기억하는가?
아마도 정말 좋은 기억이나 나쁜 기억이 간헐적으로 기억이 날 것이다. 마치 마침표처럼 멋지게 점을 찍어놓았던지 책의 일부분을 읽어보고 위해 잠시 접어온 것처럼 인생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기억이 난다.
누구나 유년기가 있었고 청년 시절이 있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신만의 고통을 겪기도 하고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인생은 종착점에 다다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빠른 기차를 타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느린 완행열차를 탄다. 인생에서 있어서 어떤 사람보다 빠르고 느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빠른 것과 느린 것이 상실의 시간을 건너뛰게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인생 마지막 여정에는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그때까지 적어도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만은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