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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I와 공부한다.

딥씨크, 챗GPT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존재는 어떤 삶을 살게 할까.

딥씨크나 챗GPT에게 수학 킬러문항을 집어넣어 답을 구했을 때 몇 분 걸리지 않아서 답을 추론해냈다고 한다. 과연 사람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한국교육은 지금까지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차별화하고 구분해 내는데 활용이 되어왔다. 비싸다는 사교육을 시키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의 자식을 기르는데 집중해 온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말은 하지만 자기의 자식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진보적인 혹은 사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TV나 언론등에서는 그런 교육은 이제 지양해야 하느니 사람답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정작 그 대상이 자신의 아이가 되어버리면 180도 달라져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AI는 이제 우리의 삶의 많은 것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은 하고 있다. 수학이나 영어와 같이 어떤 패턴이 있거나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정답이 있을 경우는 인간보다 더 효율적으로 결과를 내놓는다. 인간은 어떤 수준에 이르러서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볼 때 자신만의 창조성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한국 교육은 창조성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기계처럼 계산해 내는데 초점을 맞추고 어릴 때부터 더 빠르게 공부하는 데에 집중을 하고 있다. 그건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한다. 엔비디아의 저렴한 카드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인간보다 더 잘하는 것을 굳이 기계와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책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창조성을 경험할 때, 우리 자신의 창조성도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거대 언어 모델을 우리 삶의 방정식 안에 집어넣을 때, 인공지능은 아이들이 더 빠르게 학습하고 부모가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더 인간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점점 더 사회성을 잃어가게 만들어가고 있다. 혼자서 성장해서 자라나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과 교감을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신의 목소리만을 들어주면서 자라난 아이가 누구와 소통을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아이들이 동성이나 이성과 소통이 잘되는 것 자체가 매우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한 명의 교사가 한 명 한 명마다 맞춤형 교육을 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AI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면 조력자로서 친구 같은 안내자 혹은 선생들의 일을 덜어주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별로 의미 없는 지루한 일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일을 AI가 참 잘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AI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교육이 독일같이 될지는 모르겠다. 독일은 한국처럼 그렇게 순위를 나누고 차별화를 하는 교육시스템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제 가정에서의 교육도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현재의 결혼과 출산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차피 부모와 아이들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부모의 노후를 생각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제 많지가 않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AI는 다른 방식으로 등장하고 전문화되어 수많은 기업들이 출현하게 될 것인데 어떤 시스템이 교육에 적합한지는 사회가 선택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AI와 함께 공존하면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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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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