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대산마을에 자리한 함안대산리 석불 (咸安大山里石佛)
함안군 아라가야의 이야기가 있었던 축제가 열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도 빨리 지나가고 있다. 올해 축제는 말이산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함안군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역사 문화 콘텐츠를 만나볼 수가 있었다. 함안군 아라가야의 밤을 거닐며 함안군에 자리한 세계유산의 아름다움을 낮과 밤 구분 없이 색다르게 즐겨보았던 날이다.
자연의 시간은 어떻게 될까. 사람의 시간은 지나고 보면 빨리 지나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푸릇푸릇한 싹이 올라오고 녹색으로 채워지고 다시 낙엽이 떨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이곳은 함안군의 대산마을의 입구다. 입구에서부터 떨어진 낙엽이 가을임을 알리고 있었다.
대산마을에 자리한 함안대산리삭불은 보물 제71호로 지정된 석물로 전체적으로 딱딱하고 경직된 자세, 특이한 법의 및 형식화된 동심타원형의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낙엽이 떨어진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석탑이 홀로 남아서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 순례길은 오른쪽 대사교를 건너가지만 왼쪽에 200m 떨어진 대산리 석불(보물)을 보고 오면 좋다.
마을을 지켜주는 듯한 공간에 오래된 고목과 함께 석불을 모셔둔 전각이 드러난다. 경남에도 마을입구에는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석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함안의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석불 중 하나는 목이 잘린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때론 문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당시에는 문화를 담고 있었던 대상도 사라지기도 한다. 목 잘린 석불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생들이 석불의 목을 부러트렸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석불의 머리를 잘라버렸다는 설들이 있다.
함안대산리 석물이 있었던 주변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지금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으로 보아 마을대신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안 대산리 석불의 두 보살상은 손 모양만 다를 뿐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머리에는 두건(頭巾)과 같은 관을 썼으며 긴 얼굴에는 가는 눈, 납작한 코, 작고 두툼한 입술 등이 표현되어 있다.
대산리석불이 자리한 곳에는 작은 비와 더불어 그 의미를 알기에 모호한 석상등이 놓여 있다. 표지석에는 "여기 절터에 심어졌던 느티나무는 천수를 누리다가 가고 그 자리에 이 마을 출신 고동원, 조용수 두 어른께서 어린 느티나무를 심어 이렇게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그 마음을 기려 돌에 새긴다. 앞으로도 사나운 비바람에 꿋꿋이 잘 자라거라"라고 쓰여 있다.
이곳 주민들이 이 마을에 큰 절이 있었다는 뜻으로 '대사리(大寺里)' 혹은 '한절골'로 부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곳이 어느 큰 사찰의 절터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사찰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자리를 사지라고 부른다. 대산리 석불이 걸치고 있는 옷은 두껍고 무거운 느낌이 들며 어깨의 매듭과 양 무릎에서 시작된 타원형의 옷주름으로 이러한 표현은 고려시대 지역화 된 석불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아직 전국에 자리한 유명한 단풍명소들이 옷을 갈아입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벌써 늦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때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아라가야의 찬란한 기억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만나기에 좋은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