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기 자신이 나약하게 노출된 자연에서 울타리를 짓고 벽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왕은 그 공간 속에서 울타리, 벽 밖에서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인류는 먹이 사슬의 정점에 올라섰다.
인류는 그 과정 동안 의식주의 분업, 생산의 분업, 생산 라인의 분업, 정치적 분업 등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빠른 발전과 산업화, 문명화를 불러왔다.
인류는 19세기를 기점으로 두 번의 세계 전쟁을 치른 후에 상호확증파괴가 가능한 각자의 폭력을 확인한 후에 폭력으로 균형을 이루는 평화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명으로 세계는 '세계화, 글로벌화'가 되었다. 이제는 한국에 앉아 어느 나라의 사람과도 화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좋기만 한 것 같은 문명 발전의 이면에는 내가 관찰한 '문명이라는 기계적 신의 강림'이 있다.
인간은 자신들도 알지 못한 채 어느 순간 '문명이라는 기계적 신을 강림'시켰다. 기계적 신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 기계적 신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를 문명사회의 부품으로 만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돼버렸다.
인간은 하루 24시간 중 일부분은 기업이나 일터의 부품으로 살아가며, 일부분은 문명사회의 핵심 부품이 되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인간으로서 갖는 감성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간다. 이제 인간에게 자유란 기계적 신의 핵심 부품으로 수렴하는 것이 되었다.
문명(기계신=시스템≠메트릭스)과 인간의 관계
물론 모든 인간이 스스로 부품이 되길 포기한다면, 문명은 작동할 수 없다. 무너진다. 다만 인류는 그 누구도 문명에서 오는 혜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부품이 되기 위해 투쟁한다. 인류의 2030에 겪는 투쟁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다. 그것은 스스로 부품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온전한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다
나는 과거에 어떤 시스템이 포함되지 않는 자유. 이데아적인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가 보통 자유라고 말할 때는 '수식'이 붙는다. '경제적 자유', '영적 자유' 등등
즉 자유란 특정한 시스템에서만 발견되며, 소수가 누리는 것으로 보아 어떤 부산물이거나 맹점을 뚫고 들어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영적 자유'는 실재적으로는 인간은 누릴 수 없지만, '경제적 자유'를 보면 결론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시스템 밖에서 온전한 자유를 찾겠다는 것은 망상이며,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또 나는 원시시대로 돌아간다면 자유를 위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나의 자유를 위해서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고 결국 자본주의와 같은 모습에 수렴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류 역사 최고의 발명을 뽑으라면 나는 '자본주의'를 뽑겠다. 물론 그 자본의 사유재산을 인정해 주는 '민주주의'도 GOAT 지만.
메트릭스를 벗어나라?
한동안 메트릭스를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SNS에 도배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메트릭스'다. 철학적 이유로 몇 번이고 봤고, 철학적 이유로 메트릭스를 보고 자살한 사람들도 많았다. '통 속의 뇌'라는 화두다.
메트릭스는 '사회 시스템'이 아니다. 영화의 네오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구원자'로 나온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그렇듯, 노예는 스스로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한다. 그 노예라는 역할에서 나오는 '분명함'에 취해버린 것이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메트릭스'란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말한다. 그리고 '빨간약'을 통해 그 세계를 벗어나 진짜 세계를 마주한다.
두 번째 문단에서 말했듯, 빨간약을 통해 진짜 세계를 본다고 해도, 다시 가짜 세계의 주민으로, 기계들의 노예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진짜 세계에서는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하면 살아갈 수 없다.
충분히 더럽고 어려운 것을 알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 이상 다시 편하고 즐겁던 거짓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 메트릭스를 벗어나라는 메시지는 그냥 월급 받지 말고 사업해라!라는 달콤한 사기? 에 불과하다.
인간은 책임감을 원한다. 다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가 메트릭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돈과 사업, 금융, 경제, 헌법, 세법, 부동산법' 등에 대해서 교육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며 말한다.
그런데 나는 '리스크'와 '책임' 그리고 그것을 짊어져야 하는 '인류의 공통된 속성'을 관점으로 해석해보려고 한다.
우선 인간은 책임감을 원하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감을 원할 뿐이다.
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감도 '조금도 손해보지 않는 수준'에서의 책임을 원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50% 이고, '아주 조금은 손해 봐도 좋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감정까지 얻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인류는 46%다. 그리고 오직 인류의 4% 만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목적을 둠으로서 어쩌다 보니 인류를 책임지는 것처럼 된다.
또 리스크와 책임이다. 인간의 위와 같은 정량적 구조를 보면 4%는 도서관을 통해서, 전문가를 통해서 결국 정보를 알아낸다. 세상은 메트릭스가 아니다. 영화 속 메트릭스는 이 세계가 거짓된 세계라는 것에 대해 통제와 검열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 속에서 이 세계가 거짓이라고 말하려고 하면 시스템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입이 사라진다. 1편 초기에 주인공의 입이 그렇다. 거짓인 걸 깨달았지만,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의 입이 사라진다.
또 하나의 '인류의 공통된 속성', 바로 죽음이다.
영화 메트릭스의 주인들은 기계며, 프로그램이다. 죽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영원한 독재가 가능하다. 다만 인간의 세계는 독재가 불가능하다. 모두가 죽으며, 모두가 대체되어야 한다. 그래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기계신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다.
오히려 기계적 신의 핵심 부품이 돼버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대체할 부품이 없을 것에 대해서 걱정한다. 그들은 돈이나 명예로 살아가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인류의 번영과 문명의 발전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평화과 질서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낸 것은 기계신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다. 톱니끼리 맞물리는 공간에도 틈이 있고, 그곳에 먼지, 세균, 벌레가 끼어 돌아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는 닮은 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이 세계는 메트릭스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와 지식을 풀고, 리스크를 감당하고 뚫고 올라와 기계적 신의 핵심 부품이 많아지길, 그래서 인류가 지속 가능하길 바라는 핵심 부품들이 세계를 굴린다.
어떻게 살 것인가? 두 갈래 갈림길뿐
위와 같은 이유로 인간이라면 적어도 두 갈래 갈림길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정해야 한다.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건 바꿀 수 없다. 단 이 속에서 그냥 부품으로 살아갈지, 핵심 부품으로 리스크와 책임을 떠안고 도전할지가 문제다. 물론 그냥 사회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똥을 싸지르는 쓰레기로 남을지 결정하는 것도 본인의 몫이다. 이 경우 그냥 주저앉은 것이다.
나는 그냥 부품의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핵심부품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인간성을 포기해야 한다. 과거 과학 기술의 발명, 발전이 미진한 시대에서도 이런 점이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그 자리의 의무를 내다던진 귀족과 왕족이 있다. 그냥 그 위치에서 오는 힘과 권력을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서만 휘두른 자들이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났다.
스스로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만 올라올 수 있게, 그 마음뿐만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등반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행복과 쾌락, 만족, 탐욕이 중요하다고 깨달은 사람들은 등반을 멈추고 지금까지 오른 자기 위치를 지키게 된다.
물론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태어나보니 이미 돈이나 권력이 있는 구조를 혁명을 통해서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요즘은 모두가 핵심 부품이 되길, 착각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핵심 부품이 되길 원한다. SNS 등으로 핵심 부품인 것 같은 사람들의 삶을 본다. 화려한 소비의 삶을 본다. 그런 소비의 삶이 핵심 부품의 삶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의 삶만을 보자면, 그들의 삶에서 그런 소비는 시스템의 자유처럼 부산물일 뿐이다. 그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에 대한 '기여'다.
그들의 일상, 소비를 보며 핵심 부품이 되길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일과 고뇌 등 '기여'를 위한 행동을 보고 따라 해야 하는데 말이다.
모두가 핵심 부품이 돼서 누리는 결과를 원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노력은 원하지 않는다. 방법도 모르고 사실 알려준다고 해도 그걸 해내는 사람은 위에서 말했듯 인류의 4% 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글에서는 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봤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세계에서 무너진 격차와 남아있는 격차에 대해서 말하며, 그런 세계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너도, 나도, 누구도 태어난 것만으로는 똥 만드는 쓰레기일 뿐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