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 가지 격차,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의 격차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인류 사회를 살펴보면 그곳에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네 가지 격차가 존재했다. 순서대로 첫 번째 사람을 모으는, 모이는 곳의 소유, 두 번째 자본력, 세 번째 기술력, 마지막 네 번째 순수 지능.
인터넷의 발전으로 세계는 연결망을 형성해 글로벌화되었고, 첫 번째 격차인 사람을 모으는 공간의 힘을 누구나 가질 수 있게 인터넷 속으로 옮겼다. 그렇게 첫 번째 격차는 무너졌다. '도메인과 트래픽'의 탄생이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등 소통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그 소통 공간은 왁자지껄한 시장이 되기도 음지의 파티룸이 되기도 한다.
AI의 발명과 발전으로 자본력과 기술력. 두 가지의 격차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이미 많이 무너져서 벽이었던 것이 문턱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아직 특정 분야에서만 그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CG를 예로 들어보자면,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까지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AI를 통해 매달 몇 만 원의 값싼 돈을 지불하고 기술자와 같은 효과를 끄집어낼 수 있다.
AI는 두 가지 격차로 남아있던 기술력과 그 기술력에 지불해야 했던 자본. 그러니까 자본력. 두 가지 장벽을 허물고 문턱으로 만들어 버렸다.
마지막에 남은 격차. 그리고 아마도 영원한 인류 사회의 격차로 남게 될 것은 '순수 지능의 격차'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로도 극복할 수 없다. 뉴럴링크가 인간의 뇌와 전자기기 즉, AI와의 결합이라고 해도. 마치 식칼을 어린아이, 성인, 아마추어 요리사, 전문가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격이다. 모든 격차가 무너지고 마지막 순수 지능의 격차만 남은 세계에서 모든 것을 빠르고 효율적이게 만들어줄 AI의 탄생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순수 지능의 격차로 인한 모든 분야에서의 빈부격차가 실현되게 만들 것이다.
순수 지능의 격차는 유전자 편집에 의해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능은 신경 가소성에 의해서 변한다. 후천적으로 똑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환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높은 순수 지능으로도 멍청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순수 지능의 격차.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IQ(~지능), EQ(~지능), AQ(역경지수)를 키워내야 한다.
AI 시대에 살아남을 사람
AQ(역경지수)는 류시화 시인의 시 중 한 문장을 인용해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AI 시대에 살아남을 사람은 사회의 시스템을 모두 이해한 후에, 그 위에 본업을 올리고, 본업과 관련된 AI 서비스를 익히고. 미래 비전을 세우고, 계획을 세우고, 기획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AI와 협업하며 AI를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저항하고, 절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 저항, 절제, 생각
저항, 절제, 생각. 이 세 가지는 지능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삶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인간이 무기력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 단계, 다음 계획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능동적으로 밀고 가나기 위한 다음 단계를 모르는 인간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내하며 행복을 느낀다. 모두가 변태다. 고급진 말로 인간은 삶의 목적이 행복이면 안된다. 인간은 무언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다.
애초에 행복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너무 불확실하다. 오히려 확실한 고통 속으로 뛰어들어 그 고통을 극복하는 삶이 확실하며 그 과정이 행복과 성취감, 자신감의 뿌리가 된다.
통제할 수 없는 행복을 좇을수록 불행해질 것이다.
오히려 확실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즐겨라.
룰 브레이커 : 허락받지 않는 자
저항, 절제, 생각을 항상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세상과 세상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기가 정점으로 올라설 본업을 정하고, 본업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끝없이 쏟아내는 생산을 통해서 정점이라는 확률에 수렴해 올라가는 것이다.
그 어떤 인생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다만 본업에서 경쟁을 할 때, 스포츠가 아니라면 언제든 이기기 위해서 암묵적 룰은 부숴버려도 좋다. 내가 말하는 암묵적 룰은 업종 전반에 뿌리내린 전통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A 하려면 B 해야지."라는 말을 무시하고, 그냥 어디 굴러다니는 ∀를 가져와서 뒤집거나.
"A 하려면 B 해야지."라는 말을 무시하고, C로 A를 만들어버리거나. C로 B를 만들어서 A를 만들어보고 C에서 B를 거처 곧바로 A까지 만들어내는 라인을 만들어보거나.
"A 하려면 B 해야지."라는 말을 무시하고, A를 하기 위해서 B를 무시하고, 곧바로 A를 하거나.
상식, 관습 등
내가 없을 때부터 있던 모든 규칙. 틀에 박힌 생각은 전부 부숴버린다.
어떤 것도 허락받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책임은 온전히 허락을 받든 아니든 행동한 사람의 몫이고,
기존의 방식과 기존의 것으로 기성을 따라잡고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본질적인 것을 낡았다고 버리는 실수를 한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므로 본질을 보는 눈을 키워야 그것을 빼고 전부 다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까. 故이건희 회장의 말이 떠오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능동적이어야 하고, 그 움직임이 역동적이어야 한다.
GRIT 하며 목적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변화하는 사회에서 효율적인 수단을 학습하는 기지를 발휘해라 전쟁을 위해 칼을 버리고 총을, 총을 버리고, 탱크, 미사일, 전투기, 핵, 레일건, 잠수함 등등 목적을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계속해서 앞서 변화해라.
정신관리 : 불안과 우울
우선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었고, 그것을 완벽하게 해소했다. 나의 경우를 소개해보자면, 지금에서야 깨달았는데, 나는 고독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다. 따로 연락해서 만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친구로 1년에 1~2번 연락해서 만나고 보통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해주는 경우다.
나는 혼자 있는 것으로 우울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혼자 있는 이유는 진짜 단순하게 꿈과 목표가 있고, 그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걸렸는데 생각해 보면 이렇다.
나는 '불안'은 느끼고 살았는데,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항상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무시했던 거고. 그러니까 나는 불안을 느끼는데 그걸 다스리려는 생각도 없었고, 불안이 커지면 병이 된다는 것도 몰랐다.
불안이 커지니까, 공황장애가 오고, 공황장애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거였다. 그래서 나는 뇌과학 책을 보며 병원과 교회를 다녔는데, 불안을 관리하는 방법을 따라 하고, 배우고 익히고 변형하고 생각의 흐름을 만들었더니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능동적으로 방법을 찾았고, 내 일을 했다. 힘들었던 건 잠깐씩 멍 때릴 때, 죽음을 원하게 되거나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이 막혔던 거? 그런데 그런 것에도 익숙해지고, 그런 것들과 익숙하게 함께 살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증상과 함께 살면서 나는 결국 불안을 관리하는 방법을 익힘으로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완벽하게 해결했다.
20대 초중반에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정신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자기 연민에 빠져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라는 병명 뒤에 숨으려는 친구들이 있었다. 노예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줘도 노예로 남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벗어나는 법을 알려줘도 그 뒤에서 편안하게 약자, 환자라는 단어 뒤에 숨으려고 했다.
어쨌든 우리도 인간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각자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신 건강의 관리는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불확실성 속에서 도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안과 우울감은 누구나 느낀다. 그런데 그것을 다루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정신의 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이런 고도로 발전해서 장기 저성장으로 진입한 나라에서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자 CHALLANGER
기존의, 기성의 모든 것에 도전해야 한다.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순응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 순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도전하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 시대에 모험가나 탐험가는 없지만, 아직도 그리고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도전자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을 멸망시키려는 환경적인 조건에도 이미 도전장을 던졌다.
투쟁심, 호승심, 폭력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을 사회화시켜 승화하게 하는 것이 학교와 가정의 역할이라고 본다. 자기들이 조금 편해보자고 거세하는 게 아니라. 그런 남성성의 거세는 인류 전체적인 손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그냥저냥 갈등 없는 관계만 유지하려고 하지 마라. 20대라면 여러 가지 관계를 통해서 갈등을 경험하고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피하지 말고 직면하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길고 긴 인생에서 중간에 무너지기 싫으면 말이다.
일할 시간은 죽도록 많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쓸 도구를 폭발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순간의 decade를 지불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가장 에너지 넘치는 20대의 decade를 지불해라.
만약 당신이 20대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지금이 가장 빠르다는 건 당신도 알 테니까. 지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