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자연스럽게 단지 안에 자리한 GS25로 들어갔다. 너무 자주 오니까 사실 여기서부터 집이 아닐까라는 민망한 생각과 함께 카운터 옆에 비치된 녹색 바구니를 들었다.
가장 안 쪽으로 들어가 왼편 음료 냉장고 문을 열고 계속 들고 있으면 손 끝이 아릴 정도로 시린 맥주캔 4개를 꺼내 넘어지지 않게 바구니에 세웠다. 안주를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과자 코너를 보니 눈에 들어온 건 오징어 땅콩. 꽤 좋은 선택이라 자부할 때 문득 내가 언제부터 오징어 땅콩을 좋아했는지..
다양한 과자들을 섭렵해왔다고 할 수 있지만 오징어 땅콩만은 예외다. 난 먹지도 않을 맛 없는 과자를 사오라던 부모님을 향해 이 과자가 맛있냐고 물었던 때가 생각난다. 그걸 왜 드심?썩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너도 나이를 먹나 보다”
시키지 않아도 오징어 땅콩을 사오는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이젠 아버지와 또 다른 교집합이 생겼다는 반가움에 기분이 좋다.
오징어 땅콩이 왜 맛있어졌을까. 시원한 맥주를 마셔봤기 때문이다.짭쪼름하면서도 달고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안주가 그렇게 맥주와 찰떡궁합이다. 19살을 뛰어 넘으며 맛본 맥주 덕에 오징어 땅콩의 몰랐던 맛을 발견했단 뜻이다.
삼성 갤럭시 S21
##힐링의 순간
그럼 내가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오징어 땅콩의 맛을 영원..까지는 과장이더라도 꽤 오랜 시간 몰랐을 거라 생각하니 나는 왜 맥주를 마시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얀 거품을 밀어 올릴듯 솟아오르는 기포들. 마시고선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린 힘이 목젖을 때려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마침내 발사되는숨. 그 공장 같은 모습들을 보던 어린 내게 호기심이 불을 질렀었다.
어쩌다 어른들이 '한 모금 마셔볼래' 하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마셔선 안 된다는 금기가 불러온 호기심이 충족되는 맛이 더 강렬했다. 스무 살이 지나 원 없이 맥주캔들을 쌓아놓고 마시게 될 때 즈음엔소년의 호기심은 찾아볼 겨를도 없이 사라진 후다.
호기심이 충족된 허탈함은 맥주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맥주로 세계를 돌면서 밀과 보리의 차이, 라거와 에일의 차이를 (백종원 선생님한테) 배웠다. 그러다다가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는 '국산 라-거다'란 강력한 캐치프레이즈에 세뇌 당해 야식엔 '카-스'만 찾게 되면서 오징어 땅콩의 진가를 발견하게 됐다.
금기를 향한 강력한 호기심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가슴 떨리는 무언가가 사라졌단 면에서 슬프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