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현은 가현이 그립다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 아빠는 산신령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산에다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는 거야.”
“뭐야. 그런 이유라고?”
“진짜야. 산신령은 있다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줄 알았던 아빠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하나쯤은 가지고 살고 있었다.
가현 선배를 만났다. 변하지 않는 사람. 표정을 보면 감정이 드러나는 사람. 불안함이 많았던 사람. 그러나 그랬기에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사람.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던 선배였지만 모든 동아리가 그렇듯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진 선배. 대학 동아리란게 그렇다.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면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사람을 붙잡으러면 함께 썰물처럼 흐름을 타고 밀려나가야 한다.
“썰물은 달의 일이야. 규현아.”
언제 한번 가현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요즘은 동아리방에 잘 안 오시네요.
“그래도 간간히 우린 볼 테니까.”
가현 선배는 언젠가 보자고 했지만 그 언제가 언제인지 말을 해 주지 않았기에 나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때론 연락하지 않는 것이 그 상대를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사랑. 나는 가현 선배 옆에 사랑이란 단어를 붙여도 될까? 그건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우연히 다시 다이어리를 펼쳐 본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넌 어떤데.”
“잘 모르겠어요.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람인데. 나도 변하는 사람인걸까. 그런 생각이요.”
책방 할아버지는 오래된 사랑 이야기에 눈썹을 움직였다. 연애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지. 할아버지는 웃었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둡다. 보통 나 홀로 혼잣말로 넘어가는 편이었다. 오랜 시간 낡은 헌책방을 붙잡고 산 노인.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끝끝내 물고기를 끌고 육지로 돌아온다. 별로 남은 것이 없지만 그것이 노인이 할 수 있는 전부였을거다.
“내가 어릴 적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동생들이 있었거든. 그래서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컬러 잡지를 주워다 팔았지.”
한번은 할아버지가 헌책방을 운영하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살려고. 살아야 했기에 책을 주워다 팔았다.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할아버지는 지금도 꾸벅꾸벅 졸면서 책장을 넘긴다. 책방에 쌓인 책들이 할아버지 허리를 짓누르듯 할아버지 허리는 굽었다.
“변한 건 없어. 책은 그대로 그렇게 쌓이는거야.”
할아버지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책 이야기로 끝났다. 대개 그랬다. 할아버지 정신이 말짱한 날이 점점 더 줄어갔다. 할아버지의 어제와 오늘의 할아버지가 낯설게 보이기도 했다.
가현 선배에게 몇 번 문자를 하다 마음을 접었다. 썰물은 달의 일이야. 가현 선배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더 만나서 잘 지냈냐고, 요즘 하는 일은 힘들진 않냐고, 그때 식사 후 더 보고 싶진 않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 모든 말들은 고이 접어 달 위로 띄워 보냈다. 보고 싶었다고. 그 말 한 마디를 하고 싶어 밥을 같이 먹자 했지만 수저를 내려 놓고, 버스를 태워 보내면서도 나는 그 말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문자를 하고 더 이야기를 이어가도 그 말은 하지 못할 거 같았다.
나는 사랑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몇 일이 더 지났다.
그리고 가현 선배에게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