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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15. 2024

부름켜의 이름으로 꼿꼿하게     

살아가는 위대한 힘

          

 생물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쉬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살며
후세를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딸과 함께 동네에 있는 봉우리를 올랐다. 빠르게 오르내리면 대략 1시간~1시간 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거리다. 얕은 봉이지만 덕분에 푸르른 자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겨울이라 자주 가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딸아이 손을 잡고 흙을 밟아 보았다.


 날이 제법 풀리어 가는지 서서히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가는 길마다 나무의 새순과 이름 모를 풀들의 연한 바둥거림이 움트고 있다. 새끼손톱만큼 작고 앙증맞아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생명은 서서히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에 차이는 지난겨울의 낙엽 위로 공기마저 따습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나보다 더 오랜만에 운동 겸 따라 나온 딸아이가 어느새 뒤처지고 있다. 그 소리가 헉헉 귀에 매달려 잘도 들린다.

 "엄마, 같이 가요!"

 "얼른 와~~" 손짓하다가 기다리길 반복한다. 나보다 체력이 안 좋으니 어찌하누?

 몸에 열이 생기니 간지럽다며 난리다. 손을 잡아끌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는 산길은 공기부터 다르다. 조용한 산길을 오르는 사이 멀리 ’따닥따닥‘ 나무 두드리는 소리(딱따구리 내는 소리인지도 모를)가 연거푸 들리더니 새소리가 맑게 울리며 후루룩 날아간다.    

 

 딸은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며, 숨이 차다며 오르막길을 지나 쉬고 가자 한다.

 "그래 중턱쯤 왔으니 잠깐 쉬자."

하늘과 맞닿은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낮은 봉우리일지라도  올라와 봐야 비로소 넓게 펼쳐진 전경을 맞이하게 된다. 쉼이 주는 혜택은 내려다보이는 풍경 사이에 펼쳐진 공간이 한눈에 들어올 때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다.

  



 오르다 보면 참나무, 밤나무 등 이름 모를 나무들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는 소나무다. 비벼대는 나무 둥치마다 바람소리가 깨끗하다. 나무들이 내는 공기는 소리부터 다르다. 관찰하며 다 보니 소나무의 껍질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조각조각들이 겨울을 이겨내 한껏 부풀려져 있다. 어떤 나무는 매끈한데 소나무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어릴 때 과학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딸과 다시 걸으며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원아, 왜 이 나무는 매끈한데 소나무는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을까?"

 "나무가 커 가면서 부피 때문에 갈라지는 거예요."


 궁금함을 못 참아서 알아낸 원리는 이랬다.      

 나무는 봄부터 새순을 밀어내면서 줄기를 살찌우고 몸집을 키우기 시작한다. 물관과 체관을 사이에 두고 줄기는 영양분과 물을 흡수하며 점차 성장하고 생육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포들이 자라나게 되고 기존 세포들은 밀려난다. 바깥으로 밀어진 세포는 늘어난 부피를 감당하기 위해 갈라지게 되고 마치 건조한 피부의 조각처럼 형성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두꺼워진 껍질은 저절로 떨어진다.

 마치 피부를 보호하다가 28일 주기로 탈락하여 나가는 사람 몸의 각질과도 같은 원리이구나!     


 두 세포층이 줄기 안에서 겹겹이 교차해 쌓이어 매년 만들어내는 나이테로 세월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나이테가 바로 연륜의 흔적을 이루는 표식이 된다. 형성되고 사라지는 경계에서 ‘부름켜’가 있기에 식물이 생장하여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름드리가 되는 원리도 하나의 싹에서 시작한 무수한 세포 분열과도 같다. 그것은 끊임없는 이어온 생장 과정으로 이루어낸 오랜 연륜의 견딤이라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식물의 두께를 키우기 위해 부름켜는 끊임없이  사계절의 해를 거듭할수록  마디마디 쌓인다. 우주의 원리가 이 안에 다 들어 있으니 놀랍고 신비할 따름이다.

  스스로 내어줄 줄 알고 떨어져 갈 순간이 언제인지 알고 행하는 나무의 진리는 땅속 깊게 뿌리까지 전해져 점점 깊어진다. 태풍과 비바람, 뜨거운 태양까지 견디어 내는 꿋꿋함은 어디에서부터 시작일까?

 삶을 지탱한 힘으로 묵묵히 굽어보며 든든한 그늘이 된다.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공기를 내어준다. 한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사랑 앞에 그만 숙연해졌다.    

  

 나무가 살아가는 방식은 결국 부름켜로 이어지는 안과 밖의 적절한 조화인 것만 같다. 내가 만약 다른 생물로 태어난다면  조그만 싹으로 그렇게 시작하여 저렇게 우뚝 서 있는  소나무의 세월 따라 굳건히 자라날 수 있을까? 긁혀보고 햇빛에 이글이글 보기도 하며 견디어가야 단단한 나무가 된다.  우리 사는 인생도 무수히 부딪히는 어려움 속에 넘어지고 깨지며 다시 일어나는 순환적인 방식이 쌓여 단단함이 생긴다.  


 우뚝 서서 굳건히 나아간다는 것은 나의 고집대로만 주장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물이 흐르듯 변화 앞에 유연하게 굽어가는 마음이다.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기어 가 세월을 흔적대로 성장하여 가는 나무의 인내에서 그것을 배운다.  


땅에서부터 세포 하나 꿈틀대기 시작하며 자라고 있다. 우주의 섭리가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기어코 밀어낸 새순이 나무 끝에서 빼꼼 눈을 뜨며 봄을 부른다. 그 힘은 작은 것 같으나 가장 강하다. 

작은 것인데 참으로 위대한 힘이 들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빛나고 있으며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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