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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늘의 시 16화

다해간다는 건

by 현정아

눈 쌓인 출근길 소복한 길을 따라

자전거 거치대의 자전거가 즐비하다


누구의 시간으로 이곳까지 달려왔을까


하루가 쌓인 시간만큼

계절을 따라 간

녹이 슨 자전거 바퀴


더 이상 돌지 못한 채 삐걱이며 멈춰 섰다


때론 누군가의 걸음을 대신

튼튼한 출근길의 한 때로


때론 누군가의 손을 덜어

든든하게 짐을 덜어냈을


인생의 기로마다 달리고 달려, 돌고 돈 자국

부여 잡은 관절의 걸음만큼이나 힘겨워 보인다


그대로의 한기 겨울의 함박눈

쌓인 만큼 그대로 맞고 서서

기다리는 시간 깊어진 주름


인생의 걸음은 결국 다해질 때가 분명 있지만


고비마다 삐걱이며 버텨낸 힘

기나긴 인내 녹슨 바퀴 따라

울고 웃던 가장 좋은 순간들이

내내 그곳에 머물러 있음을


기억해 본다


그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이틀간 한파에 눈 쌓인 거리를 뚫고 출근했어요. 겨울은 원래 춥지만 유난히 추운 한파가 갑자기 밀어닥쳐 연신 핸드폰의 재난 안전문자는 '삑삑' 알람을 울려대요. 운전하며 보인 차량 외부 온도는 영하 14도지만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나 더 되는 것 같아요. 코트 사이 들어오는 바람의 무게만큼 쓸쓸한 겨울을 포근히 감싸 안아요.


혹시라도 출근길이 정체되어 늦어질까 봐 서둘러 출발했어요. 아침의 공기를 가르며 아무도 밟지 않은 주차장에 일찌감치 차를 세워 놓고 주변을 둘러보니 세상이 참으로 고요하네요. 하얀 눈을 잔뜩 품은 하늘을 따라 아침해는 주홍빛의 여운을 살며시 띄우며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의 걸음을 따라 찍히는 발자국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낭만을 즐겨요.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소복하게 내린 눈만큼 고요하고 평온해져요.


직장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자전거 거치대를 지나야 해요. 오늘따라 쌓인 눈을 따라 세워진 자전거들이 한눈에 들어와요. 이리저리 흠집이 나고 녹이 슬고 바퀴는 이미 공기가 빠져 있어 눌린 채로 푸석거려요. 누군가의 의자가 되었을 안장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오히려 쓸쓸해졌어요. 눈 위를 '뽀드득' 살며시 걸으며 느낀 평온했던 기분은 자전거 거치대의 바퀴를 따라 돌고 돈 인생을 본 순간 그만 숙연해져요.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 몇 만 번의 도돌이표로 달렸을 인생의 시간만큼 억겁의 고비를 얼마나 견디었을까요. 그것은 무릎이 아파 몇 걸음 못 떼는 나이 든 노년의 삶이라 여겨져요. 울고 웃던 순간을 달려 이곳에 안착한 순간 더 이상 돌지 못할 바퀴지만 시절을 견딘 힘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살아온 시간만큼, 깊어진 시간만큼 몸과 마음은 서서히 느려지고 아프기까지 하겠지요. 하지만 계절을 따라간 시간 사이 고여진 깊이만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기억해요. 나이가 들어 착잡하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녹슨 자전거 바퀴만큼 오래도록 힘차게 걸어왔음을 느껴요. 눈 따라 둥글게 놓인 녹슨 바퀴 따라 고인 인생이 그렇게 잘 흘러왔음을 바라보게 한 출근길 아침이에요. 나를 지킨 부모님이 걸어간 길만큼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요.


눈 쌓인 길을 따라



나의 발자국이 향하는 길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출근 후 옥상에서 해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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