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감은 끝이 아니다
내어줌과 받아들임
나무는 기다릴 줄 안다
바람이 떨어져 간 자리
끝을 향한 나뭇잎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무성진 그늘 홀연히 사라지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내려놓음
존재하던 홀로의 다함은
나무만이 지닌 인고의 계절
우리네 인생도 나무와 같다
작은 싹이 뚫고 나와 흙으로 가기까지
저마다 피고 지는 순환으로 이어지는 날들
얻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삶은 하루의 최선을 따라가기에
수많은 기다림으로 두꺼워지게 되는 것
계절의 몇 겹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
겨울의 나무는 시린 바람을 맞아 쓸쓸한 그림자를 남겨요. 한때 여름의 그늘 속 영광은 없지요. 그러나 찬찬히 나무를 보다 보면 그 속에 온 계절이 다 들어 있더라고요. 끝을 다한 나뭇잎은 계절이 깊어질수록 나무로부터 점차 떨어져 가지만 뿌리를 덮은 흙 위로 살포시 내려앉아요. 흙으로 돌아가 영영분을 만들고 거름이 되어요.
말하지 않아도 내어줌과 받아들임이 그곳에 있어요. 나무는 결코 혼자의 삶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스스로의 인내가 빚어낸 계절은 겨울에 더 빛을 발해요. 쉬어가는 계절이라지만 어쩌면 더 바쁜 계절일지도요. 나무는 곧 돌아올 새로움을 향해 꽃눈을 품어요. 가지 끝 매달린 꽃눈을 잘 보듬다 어느 날 '톡' 봄이 오는 소리를 따라 살포시 열어내요. 그 시간을 기다리며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순환적 삶이 바로 변화예요.
일상의 것들을 품어간 변화는 어쩌면 변하지 않으려 지켜내려는 내어줌과 받아들임이 아닐까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이름 따라 주고받는 자연의 섭리가 신기할 따름이에요. 섭리대로 피고 지지만 그것은 결코 같다고 할 수 없어요. 오늘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걸음의 가치를 나무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요. 한 걸음은 더디나 한 걸음이 쌓이면 저만치 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아요.
나무처럼 온전하게 둥글게 되는 삶을 만들려면 몇 겹의 두터움이 이룬 꾸준함이 있어야 함을 배워요. 나무는 계절을 따라 항상 자리에 있지만 변화에 가장 민첩해요. 변하지 않을 온유함을 위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 변화해 가는 것이라 여겨져요. 나무의 인내는 지금도 소리 없이 무수한 에너지를 품어 돌고 돌지요. 나무는 보편적 삶을 다해가지만 그 치열함이 이룬 계절의 이름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