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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Jan 20. 2022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일상이 될 것이다

-아침에 읽는 시 하나

사막에서 안개가 일어나 공중에 숲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것이 나타나 가 보면 없고, 호수의 섬들이 출몰하고 나무의 그림자가 2백 리에 걸쳐 펼쳐진 듯 보였다는 연행길에 사로잡힌다


드넓은 평원이 호수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안개가 필요한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나무가, 아니 얼마나 많은 환상이 필요한 것인가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환상을 말하였다 환상을 말하지 않은 자는 계주를 지나가지 않은 자이다 연행록의 글과 그림은 환상도 꿈도 아닌 그저 기이한 풍경이라 말할 뿐


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손발이 되었다 기이하고 기이한 풍경이 우리를 신비롭게 했다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

      - 기이한 풍경들(민음사)/ 조용미


'드넓은 평원이 호수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안개가 필요한 것인가'. 난 이 문장을 인생으로 읽는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인생 한편이 완성되겠는가.

완성을 말하기 전에 오늘도 아이들은 마스크를 끼고 학교에 왔다. 요즘 뭐가 힘드냐고 물었다.

"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까 힘들어요"

" 집에 있다가 학교에 온다니까 좋았는데 막상 오니까 그저 그래요"

" 공부할 게 많아서 힘들었어요"

" 아침에 밥을 먹었는데 금방 배가 고파졌어요"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가 힘들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고, 배고파서 힘들고, 일상이 똑같아서 힘들고, 기대했던 것이 이루워지지 않아서 힘들다.  


내가 호수처럼 보이려면, 내가 울창한 숲이 되려면, 내가 한 그루 든든한 나무가 되려면, 나는 얼마나 많은 환상을 품었다 지웠다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다짐과 후회가 또 있어야 하는 걸까.


어느 날, 호수라 여겼던 것들이 호수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해도, 그 허망함과 실망을 누르고 또다시 다른 무엇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의 숙명이니까. 그래야 나의 풍경을 가지게 되니까.


그런데 내가 품어내는 풍경이 기이한 풍경이란다. 환상도 꿈도 희망도 아닌 그저 기이한 풍경일 뿐이란다. 그럼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것이나, 날마다 꼭 해야만 했던 것들이 기이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아니 기이해도 좋다는 거다. 어쩌면 역사는 그 기이한 데서 다시 출발하므로.

요즈음 우리들의 지구만 해도 기이한 바이러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이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는 생전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해오고 있다.

온라인 개학을 했고, 온라인 회의, 자가격리, 사람 간에 2m 간격 유지하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도 새로 생겨난 이질적인 말이다.

박물관을 가도 앞사람과는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영화를 봐도 한 줄씩 건너뛰고 봐야 하며, 공공장소에서 밥을 먹을 때는 칸막이 밑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새삼 '우리'라는 말보다 '각자'라는 말이  더 의미 있게 다가드는 세상이 되었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늘 가까이 있으면 상대방의 빛을 못 보게 된다고. 같이 있는 시간이 좋지만, 따로 떨어져서 있는 시간도 빛이 되는 거라고. 그래서  따로 떨어져 있던 각자가 서로 만났을 때 서로의 빛을 볼 수 있는 거라고.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어야 서로의 빛을 볼 수 있다.

코로나가 만들어준 이 기이한 일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각자의 시간을 갖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본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정신을 점령하고,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오늘 이 기이함이 우리를 신비롭게 할 것이다. 기이한 풍경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하고 오늘의 하루가 문득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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